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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디.. 어. 블랙홀 ..어 ....디 ......드

할리우드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한 블랙홀 '가르강튀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1915년 발표한 '일반 상대성 이론'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호기심을 많이 불러일으킨 건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는 개념입니다. (이 블로그 절친) 위키피디아는 사건 지평선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건의 지평선이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그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 외부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경계면이다. 사건 지평선의 가장 흔한 예는 블랙홀 주위의 사건 지평선이다. 외부에서는 물질이나 빛이 자유롭게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내부에서는 블랙홀의 중력에 대한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커지므로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되돌아 갈 수 없게 된다.


요컨대 사건 지평선으로 둘러 쌓인 영역을 블랙홀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러니 인류 역사상 최초로 블랙홀을 촬영하기로 모인 공동 연구팀 이름에 사건 지평선이 들어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천체를 찍으려면 망원경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이 프로젝트 이름이 '사건지평선망원경(EHT·Event Horizon Telescope)'입니다.


EHT 연구진은 1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처녀자리 A 은하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사건지평선망원경(EHT) 연구진이 촬영한 블랙홀. 처녀자리 A 은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EHT 연구진 제공


이번 연구를 이끈 셰퍼드 도엘레먼 미국 하버브대 스미스 소니언 천체물리센터 박사는 "이게 인류가 직접 본 첫 번째 실제 블랙홀"이라며 "전 세계 과학자 200여 명이 모여 100여 년 전 한 사람, 아인슈타인이 상상했던 걸 증명했다. 이 결과는 천문학 역사상 매우 중요한 발견"이라고 말했습니다.


위에 있는 사진에서 붉은 구름 형태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게 바로 블랙홀(의 그림자)이고, 구름 형태는 가스층입니다. 그러면 그 경계는 뭐라고 부를까요? 맞습니다. 사건 지평선입니다. 사실 사건 지평선은 원래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개념이었는데 이번 관측으로 실재(實在)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블랙홀의 그림자'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건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빠른 물체인 빛(시속 10억7925만2848.8 ㎞)도 빠져 나오지 못할 정도로 중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블랙홀 주변에서 나온 빛은 모두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블랙홀 자체를 볼 수는 없어도 그 경계를 볼 수는 있는 겁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시면 또 지구 쪽(아래쪽)이 반대 쪽보다 더 짙고 밝은 색이라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이건 그 유명한 '도플러 효과' 때문입니다. 소방차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면 사이렌 소리가 높은 음을 내다가 멀어지면 낮아는 게 바로 이 효과 대표 사례. 빛도 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보이는 겁니다.



이번에 공개한 게 인류 역사상 첫 번째 블랙홀 사진이라는 건 지금까지는 '상상도'만 봤다는 뜻입니다. 블랙홀은 빛까지 빨아들이는 특성 때문에 그리고 너무 멀리 있기 때문에 직접 관측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망원경에서는 촬영 대상 쪽을 보고 있는 렌즈, 즉 대물렌즈가 크면 클수록 멀리 있는 물체까지 볼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지구 지름(1만2742 ㎞)만한 대물렌즈가 있어야 이번 블랙홀을 관측하는 게 가능합니다. 이 블랙홀이 자리잡은 처녀자리 A 은하는 지구로부터 약 5500 광년 떨어져 있습니다. 빛의 속도로 이동해도 5500만 년이 걸려야 도달할 수 있는 것.


지구 크기로 대물렌즈를 만드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EHT 연구진은 지구 6개 대륙에 흩어져 있는 (전파) 망원경 8개를 묶어서 같은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8개 망원경이 2017년 4월 5~14일 열흘간 블랙홀을 관측했고 그 뒤 2년간 분석을 거쳐 이번에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이번 블랙홀 관측에 사용한 전파 망원경 위치. 미국국립전파천문대 제공


전파 파장을 작게(1.3㎜) 만든 것도 망원경 성능 개선에 도움이 됐습니다. EHT는 이렇게 만든 망원경이 "미국 뉴욕에 있는 신문 글자를 프랑스 파리에서 읽을 수 있는" 해상도를 유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전파 망원경이 수집한 원(raw) 데이터 크기는 약 350 테라바이트(TB). 독일 막스플랑프 전파천문학연구소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헤이스택 관측소에 있는 슈퍼컴퓨터가 이 원본 데이터를 영상으로 바꿨습니다.



물론 영상만 얻은 건 아닙니다. EHT 이번 관측을 통해 블랙홀 무게(질량)와 회전 성질(스핀)을 측정하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이 블랙홀은 지구(약 6,000,000,000,000,000,000,000,000 ㎏)보다 33만 배 무거운 태양보다 약 65억 배 더 무겁습니다. EHT 연구진은 '천제물리학 저널'을 통해 논문 여섯 편으로 이번 관측 결과를 공개할 예정입니다.



아인슈타인(왼쪽)은 어떤 물체가 존재하면 이 물체 무게 때문에 주변 시·공간이 휘어지게 되는데 이 물체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더 많이 휜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만약 이 물체가 너무 너무 너무… 무거우면 자기 중력을 못 이겨 쪼그라들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위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아주 거칠게 요약한 것. 이번 블랙홀 관측은 이 일반 상대성 이론을 직접적으로 증명한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 블랙홀 주위 시·공간이 왜곡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내놓은 상대성 이론에는 일반 상대성 이론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유명한 E=mc²로 대표할 수 있는 특수 상대성 이론도 있습니다. 그러면 일반 상대성 이론과 특수 상대성 이론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요? 정답은 '둘 다'지만 굳이 한 쪽을 골라야 한다면 '일반'입니다. 특수는 말 그대로 특수한 상황(①모든 관성계는 동등하다 ②진공에서 빛의 속력은 어느 관성게에서나 일정하다)을 가정한 것이고, 일반은 보편타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연결한 스티븐 호킹(1942~2018·오른쪽)은 블랙홀이 모든 별의 끝이자 우주의 시작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우주는 이번 관측 성공으로 우주의 시작에도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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