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수명은 중앙처리장치(CPU) 수명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랜덤액세스메모리(RAM)나 그래픽처리장치(GPU·그래픽 카드) 등은 손쉽게 교체할 수 있지만 CPU는 한 번 사고 나면 컴퓨터를 새로 살 때까지 바꿀 일이 사실상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컴퓨터를 고를 때 제일 고민이 되는 것도 CPU 고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기준으로 '가성비'만 따지면 나중에 성능 부족에 시달리게 마련이고, 그렇다고 너무 비싼 걸 사자면 결국 돈 낭비가 되고 말기 때문.
이런 고민을 줄이려면 CPU별 특징을 알아보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컴퓨터를 잘 모르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러니까 전문가께서 읽으시면 아니 됩니다) △인텔 제품군을 대상으로 (그러니까 AMD를 염두에 두고 계신 분께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CPU 차이를 한 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글에는 보통 (멀티)코어나 스레드(또는 쓰레드) 같은 표현이 등장하지만 컴퓨터 초보에게는 하얀 건 바탕이고, 검은 건 글씨일 뿐입니다.
그러니 실제 제품 목록을 펼쳐 놓고 제품 이름에 나타난 게 무슨 뜻인지 살펴 보는 방식을 선택하겠습니다.
아래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살 수 있는 CPU를 '인기상품순'으로 정리한 결과.
이 10가지 제품이 2019년 5월 현재 한국에서 제일 인기 있는 CPU라고 해도 크게 틀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세히 보시면 CPU 이름이 비슷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아실 수 있습니다.
이 이름에 붙은 알파벳과 숫자는 무슨 뜻일까요?
일단 밑에서 두 번째에 '펜티엄(골드)'이 등장한 걸 제외하면 CPU 이름은 전부 '인텔 코어'로 시작합니다.
펜티엄이나 인텔 코어 같은 건 그냥 브랜드 이름입니다.
인텔에서 펜티엄을 대체하려고 내놓은 브랜드가 바로 인텔 코어입니다.
인텔 코어 다음에는 i3, i5, i7, i9 같은 상표명이 붙습니다.
이 숫자는 KIA자동차에서 K3, K5, K7, K9처럼 차량 등급을 구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기본적으로 숫자가 클수록 고급형이고, (당연히) 더 비쌉니다.
이 비유를 따르면 펜티엄은 '레이', 그 아래급인 셀러론은 '모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자 예산과 필요에 따라 기본 등급을 정하시면 됩니다.
인터넷에서는 각 CPU별 성능을 포켓몬 캐릭터로 정리한 아래 그림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제일 인기 있는 CPU 톱10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펜티엄 골드 이하는 별로 수요가 없습니다.
'나는 이 컴퓨터로 문서 작업보다 복잡할 일을 할 생각이 없어요'라는 생각이 아니라면 '성능이 달린다'는 느낌을 받을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대신 가격이 싸기 때문에 '나는 휴대전화만 있어도 충분하지만 그래도 집에 컴퓨터 한 대 정도는 있어야지'하고 생각하신다면 고려해 보셔도 괜찮습니다.
i3는 '보급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로 동영상을 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기 전 사진을 편집하고, 간단한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등 일상적인 용도라면 i3만으로 충분합니다.
흔히 '멀티미디어용 PC'라고 부르는 제품이 i3를 많이 씁니다.
i5, i7은 톱10 중에 각각 세 번 등장할 정도로 인기가 많습니다. 실제로 둘 가운에 어떤 걸 살지 고민하는 분이 제일 많으실 터.
당연히 i7이 더 성능이 뛰어나지만 위에 나와 있는 정품 가격 기준으로 i5는 18만2900 원, i7은 52만2300원으로 세 배 가까이 가격 차이가 납니다.
이때 선택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은 '게임'입니다.
게임이 컴퓨터를 쓰는 주목적이라면 가격이 더 싼 i5를 사고 이렇게 아낀 돈을 그래픽 카드에 투자하는 게 나쁜 선택이 아닙니다.
고품질 그래픽을 강조하는 게임은 CPU 이상으로 그래픽카드 성능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사진이나 동영상 편집이 필요하다면 i7를 선택하시는 게 일반적입니다.
어도비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미어 같은 프로그램은 CPU 성능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안정적인 작업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RAM 용량까지 넉넉하게 잡으신다면 금상첨화.
또 (저처럼) 컴퓨터를 한 번 사면 오래 쓴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i7(또는 i9)이 낫습니다.
이 글 맨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다른 부품은 비교적 교체하기가 쉽지만 CPU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 컴퓨터를 5년 이상 쓰시는 분이라면 i7 이상을 추천합니다.
9세대부터 등장한 i9 구매를 놓고 고민하시는 분이라면 이 포스트가 필요없을 겁니다.
그저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마라'는 최종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말씀을 따르거나 아니면 그 반대를 선택하시거나 하는 차이만 있을 뿐.
그나저나 세대는 또 뭘까요?
CPU에서 세대를 구분하는 숫자는 기본적으로 삼성전자에서 스마트폰 '갤럭시' 뒤에 붙이는 숫자와 같은 구실을 합니다.
삼성전자는 2017년 갤럭시 S8을 공개했고, 이듬해였던 지난해 갤럭시 S9을 선보였습니다. 이어 올해 갤럭시 S10을 출시했습니다.
인텔도 2017년에 8세대, 지난해 9세대, 올해 10세대를 각각 공개했습니다.
아직 10세대는 공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는 8, 9세대 제품이 인기가 높은 상황입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가 알파벳 순서에 따라 컵케이크, 도넛, 에클레어 등 디저트 이름을 코드명으로 쓰는 것처럼 인텔은 2015년 '스카이레이크'를 시작으로 각 세대에 '레이크(호수)'로 끝나는 이름을 붙이는 게 기본입니다.
위에서 보신 것처럼 8세대 코드명은 '커피레이크'고, 9세대는 여기에 리프레시(Refresh)를 붙였습니다. '커피레이크-R'는 이를 한글+알파벳으로 표현한 형태입니다.
10세대에는 '아이스레이크'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그렇다고 세대별 코드명을 외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모델 이름에 각 CPU가 몇 세대에 속하는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9세대는 i5-9400F처럼 모델명이 9로 시작합니다.
그 뒤에 붙은 세 글자는 세부 모델명으로 보통 이 숫자가 클수록 성능이 높습니다.
자동차에서 같은 차종이라고 해도 배기량이 다른 차종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맨 마지막에 붙은 알파벳 한 글자는 제품 특성을 가리킵니다.
같은 제품 안에서 '옵션'을 달리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위에 나온 K는 '잠금 해제'를 뜻합니다.
원래 CPU는 설계 기준 이상으로 계산 속도(클럭)을 높이지 못하도록 제한을 두고 있는데 K가 붙은 제품은 이런 제한이 없기 때문에 오버클럭이 자유롭습니다.
따라서 같은 세부 모델 중에서 K가 붙은 제품이 제일 고성능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F는 내장 그래픽 카드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런 제품을 구입하실 때는 반드시 외장 그래픽 카드를 설치해셔야 합니다.
거꾸로 말씀드려서 어차피 외장 그래픽 카드를 구매하실 계획이라면 F 옵션이 붙은 CPU를 사셔도 괜찮습니다. 당연히 F 옵션이 붙으면 가격이 더 쌉니다.
처음에 소개해 드린 인기 톱10 CPU를 보시면 i7-9700K는 정품 기준으로 52만2300 원이고, i7-9700KF는 49만1400 원입니다.
8세대 제품에는 T가 붙을 때도 있는데 이건 전력 소비 최적화 제품을 뜻합니다. 전력은 그만큼 아끼겠지만 대신 성능은 떨어지겠죠?
노트북에서는 CPU 이름 끝에 U가 붙었을 때가 저전력 제품이라는 뜻입니다.
데스크톱과 마찬가지로 같은 모델이라고 해도 U가 붙으면 성능이 떨어집니다. 노트북에서는 특히 이 차이가 큽니다.
그래서 "사진이나 동영상 편집이 필요하다면 i7를 선택하시는 게 일반적"이라는 말이 노트북에서는 거짓말이 됩니다.
예컨대 'i7-8565U'는 i7이고, 'i5-8300H'는 i5지만 그래픽 처리에 있어서는 i5가 더 성능이 뛰어납니다. i5-8300에서 H 자체가 고성능 그래픽이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픽 작업을 자주 하시는 분이라면 이때는 i5 제품을 쓰시는 게 맞습니다.
그렇다고 U가 붙은 제품이 나쁜 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노트북을 살 때는 배터리가 오래 가는 걸 선호한다고 해서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요.
결국 사용 시간과 성능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선호하시는지에 따라 판단하시면 그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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