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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프 비더젠…딱정벌레차 '비틀' 81년 만에 단종

영화 '범블비'(2018)에서 폭스바겐 비틀로 변신한 범블비와 주인공 찰리(헤일리 스타인펠드 분). 파라마운트 픽쳐스 제공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쉐보레 카마로로 등장했던 범블비는 자기 이름을 딴 스핀오프 작품에서 '딱정벌레차' 폭스바겐 비틀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바뀐 이유에 대해 M오토데일리 이상원 기자는 "트랜스포머가 갈수록 엉뚱한(?) 방향으로 제작되는데 불판을 품은 제너럴모터스(GM) 측이 차량 제공을 거부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면서 "덕분에 폭스바겐 비틀은 은퇴 이전에 기억 속에 길이 남을 고별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영광을 얻게 된 셈"이라고 썼습니다.


이 기사가 나온 지 7개월이 흘러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폭스바겐에서 유일하게 비틀 생산 라인을 돌리고 있던 멕시코 푸에블라 공장에서 이미 맨 마지막 제품이 나온 상태입니다. 이 마지막 제품은 시중에 유통하는 대신 이 공장에 있는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이 자동차 콘셉트를 처음 잡은 건 아돌프 히틀러(1889~1945)였습니다. 히틀러는 1934년 성인 2명과 어린이 3명을 태우고 시속 100㎞로 아우토반을 달릴 수 있는, 990 마르크짜리 국민차(폭스바겐·volkswagen)를 만들기로 하고 페르디난트 포르셰(1875~1951) 박사에게 프로젝트를 맡겼습니다.


당시 990 마크르는 현재 약 920만 원.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차 한 대를 사기에는 부족한 돈이었습니다. 포르셰 박사가 이 문제를 해결한 방식은…


'표절'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생산하던 타트라(T) 97 섀시(chassis) 설계를 거의 그대로 베껴서 히틀러가 요구한 조건을 충족하는 데 성공합니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를 대표하던 자동차 T97. 인터넷 아카이브 홈페이지 캡처


맨 처음에는 이 차를 그저 '폭스바겐 타입(Type) 1'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국민차 1호' 정도 될까요? 그러다가 1967년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마케팅 차원에서 비틀(beetle)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결국 공식 모델명이 됐습니다.


요즘 차는 (포르셰 911 정도를 제외하면) 보통 엔진이 앞쪽에 있고 뒤쪽 빈 곳을 트렁크로 쓰지만 비틀 1세대는 반대. 엔진이 트렁크 자리에 있고, 보닛 아래를 트렁크로 썼습니다. 그리고 엔진을 뒷바퀴에 맞물렸습니다. 이를 흔히 리어 엔진 리어 드라이브(RR) 구동 방식이라로 부릅니다.


당시에는 '미국에 자동차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포드 모델 T 영향으로 FR 그러니까 프론트 엔진 리어 드라이 방식이 대세였습니다. 엔진을 앞에 두고 뒷바퀴를 굴려 차를 움직이게 하는 방식이 FR입니다.


그런데 히틀러가 RR 방식을 선호했던 건 군사적인 이유 때문. 엔진이 뒤에 있으면 앞쪽에서 총을 맞아도 차가 더 오래 달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설계를 선호했던 겁니다.


1938년 3월 267일 폭스바겐 볼프스부르크 공장 개업식에서 연설 중인 아돌프 히틀러. AP


폭스바겐은 1938년 볼프스부르크 공장 문을 열고 비틀 생산을 시작했지만 210대를 만드는 데 그쳤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기 때문. 전쟁 기간 이 공장에서는 비틀을 개조해 장교용 승용차를 생산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이 공장 운영권은 영국군 손에 들어갔습니다. 영국군은 이 공장을 영국 자동차 제조사에 넘기려고 했지만 희망하는 회사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비틀이 팔릴 거라고 기대하지 못했기 때문. 공식 문서에 "이 차량은 일반적인 구매자에게 매력이 아주 떨어진다(it is quite unattractive to the average buyer)"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빛을 못한 채 사라질 위기에 처한 비틀을 살린 건 영국군 장교 이반 허스트(1916~2000)였습니다. 허스트는 "영국군에게는 차가 필요하고 독일 사람들에게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면서 영국군에 차량 2만대를 주문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결국 1945년 이 공장에서는 비틀 1785대를 만들어 영국군에 납품했습니다.


영국 육군용으로 만든 비틀. 영국군 홈페이지


당시 볼프스부르크 공장은 한 달에 비틀 1000대를 생산할 수 있었는데 생산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재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더 이상 생산량을 늘릴 수는 없었습니다.


1947년부터는 이 공장에서 다시 민간용 비틀 생산을 시작해 1947년에는 9000대, 1948년에는 1만9244대를 만들었습니다. 1949년 이 공장이 다시 독일 정부 소유가 된 뒤에도 생산은 줄지 않았고 1955년에는 100만 번째 비틀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차량이 이렇게 잘 팔린다는 건 독일 경제 사정이 좋다는 뜻. 경제 사정이 좋다는 건 다양한 차량 모델을 필요로 하게 됐다는 뜻입니다. 폭스바겐은 1950년 미니 버스 형태로 된 '타입 2'를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트랜스포터, 콤비 같은 이름으로도 부르는 폭스바겐 타입2(1962~1967년형). 동아일보DB


비틀과 마찬가지로 타입2 역시 미국 시장에서 '반(反) 기성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차를 아예 '히피 밴(van)' 또는 '히피 버스'라고 불렀을 정도. 브라질에서는 2013년까지 타입2를 만들었지만 새로운 안전 기준을 총족할 수 없게 되면서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사실 이보다 10년 앞선 2003년 이미 타입1도 생산을 멈춘 상태였습니다. 그 사이 비틀 총 2152만9464대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보다 세상에 많이 나온 차는 토요타 코롤라밖에 없습니다. 토요타는 콜로라를 이미 4000만대 이상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비틀 명맥이 끊겼던 건 아닙니다. 1997년부터 '뉴 비틀'이라는 이름으로 2세대 모델을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 타입1이 히피의 상징이었다면 뉴 비틀은 여피 아이콘으로 통했습니다. 당연히 분위도 조금 더 세련되게 바뀌었습니다.


2006년 페이스리프트를 거친 폭스바겐 뉴 비틀. 위키피디아 공용


비틀은 여기서 진화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폭스바겐은 2010년 11월 22일 오프라 윈프리 쇼를 찾은 관객 275명에게 새 차를 선물하는 것으로 '더 비틀' 출시 소식을 전했습니다.


폭스바겐은 2011년 더 비틀을 출시하면서 남성성을 강조했지만 적은 내부에 있었습니다. 준준형 라인업을 선호하는 남성들 마음을 이미 폭스바겐 골프가 빼앗고 있던 것.


그렇게 더 비틀은 뉴 비틀처럼 패션카도 아니고 골프처럼 고성능차도 아닌 어정쩡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폭스바겐은 2017년 '뉴 더 비틀'을 공개하면서 분위기 반전을 꾀했지만 이번에도 실패. 하릴없이 지난해 3월 비틀 단종 계획을 발표하면서 81년간 명맥을 이어온 비틀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81년 비틀 역사를 마감하는 '더 비틀 파이널 에디션'. 폭스바겐 홈페이지


비틀은 독일 국민차로 시작했지만 사실 볼프스부르크 공장에서는 1978년부터 이미 비틀을 생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푸에블라 공장이 생산비가 적게 드는 데다 주(主) 시장인 미국과 가깝기 때문에 비틀 생산 기지 구실을 맡았습니다. 슈테펜 헤이헤 폭스바겐 멕시코 최고경영자(CEO)는 마지막 비틀 생산 절차를 시작하면서 "드디어 그날이 왔다. 복잡한 감정이 떠오른다"며 울먹였습니다.


이 공장에서 마지막으로 생산한 비틀은 총 65대. 이 중 맨 마지막 제품을 제외한 나머지 64대는 아마존에서 2만1000 달러(약 25000만 원)부터 시작해 경매를 통해 판매할 예정입니다. 이번 기회에 비틀 한 대 장만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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