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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원래 빚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제안한 '금부(金不) 분리' 정책에 대해 여기저기서 찬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추 장관은 18일 자기 페이스북을 통해 "(서울 집값을 잡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금융과 부동산이 한 몸인 것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 이래로 서울 한강변과 강남 택지개발을 하면서 부패 권력과 재벌이 유착해 땅장사를 하고 금융권을 끌어 들였다"고 덧붙였습니다.


추 장관은 계속해 "금융과 부동산은 떼래야 뗄 수 없는 기형적 경제체제를 만들어온 것"이라고 썼습니다.


"한국경제는 금융이 부동산을 지배는 하는 경제"라고 진단한 추 장관은 "이제부터라도 금융의 부동산 지배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법무부 장관이 갑자기 왜 부동산 정책에 훈수를 두는지 이해하기 힘든 노릇이지만[각주:1] 이 주장에 동의하시나요?



이런 주장이 맞는지 따져볼 때는 다른 나라 금융과 부동산은 어떤 관계인지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때 '국민 스포츠'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별로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금융과 부동산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건 기형적인 경제 체제일까요?


OECD 회원국 국민 가운데 부동산 담보 대출 없이 집을 소유한 비율은 평균 63.1%입니다.


한국은 76.1%로 OECD 평균보다 13%포인트 높습니다.


따라서 OECD 평균과 비교하면 한국은 금융과 부동산이 덜 밀접한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천히 나라 이름을 살펴 보시면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고 평가하는 나라는 우리보다 그래프 아래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진국은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비율이 높은 것 = 금융과 부동산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거를 유지하는 데 얼마나 애를 먹고 있을까요?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내놓기 시작한 2017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 국민은 가계 최종 소비 지출 가운데 22.6%를 주거비로 썼습니다.


한국은 OECD 평균 81.4% 수준인 18.4%를 주거비용으로 썼습니다.



정말 한국에서 주거비용이 스무 번이 넘는 대책을 발표할 만큼 감당하기 힘든 무게였을까요?


혹시 진단이 잘못되다 보니 처방도 잘못됐던 건 아닐까요?


최근 정부에서 만지작 거리고 있는 소위 '임대차 3법'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적어도 서울 지역 아파트만 기준으로 확실히 진단이 틀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KB금융은행 부동산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을 100이라고 할 때 올해 7월 매매 가격은 126입니다.


정부에서 열심히 서울 집값을 잡겠다던 3년 동안 서울 아파트값이 26% 오른 겁니다.


전세는 같은 기준으로 100에서 105가 됐습니다. 3년간 5% 인상입니다. 



이 정도 인상율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해야 할 만한 수준인가요?


괜히 제도를 손질해 전세가 폭등을 유도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긁어 부스럼'이라는 속담은 이럴 때 쓰라고 세상에 존재하는 표현일 겁니다.


네, 맞습니다. 어차피 전세는 사라지고 있는 제도입니다.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2010년만 해도 32.8%였던 서울 지역 전세 거주 비율은 지난해 26%로 20.8%가 줄었습니다.


국토부에서 처음 이 조사를 시작한 2006년부터 가장 최신 통계인 지난해까지 결과를 놓고 보면 재미있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008년 부동산 폭락장 때는 자가가 줄면서 보증부 월세 = 반(半)전세가 늘었습니다.


반면 2014년 이후에는 자가 비율과 전세 비율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눈에 띕니다. 


전세 → 월세보다 전세 → 자가 비중이 더 높은 겁니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 이내에 자가로 이사한 가구 가운데 41.8%는 바로 직전에 전세에 살았습니다.


서울에서 '우리 집'을 마련하는 데는 '다주택자 때려잡자'보다 '빚 내서 집 사라'는 메시지가 더 효과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주택자가 소유한 집에서) 전세를 살면서 목돈을 마련하고 그 돈에 은행 빚을 보태 집을 사는 게 우리 집 마련으로 가는 길이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금융과 부동산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만들어야 우리 집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집값을 26% 올린 것도 모자라 부동산 담보 대출까지 제한하니 집이 없는 사람은 더욱 집을 사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지난 번 포스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정부에서 (이솝 우화 '해님과 바람'에 나오는) 바람을 고집하면 할수록 '우리 집' 마련 꿈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죽하면 국민이 집을 사고 나면 보수화 되기 때문에 (그래프에서 보시는 것처럼 실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이를 막으려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리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우리가 OECD 평균보다 집을 소유한 가구가 적은 건 사실입니다.


OECD 회원국 평균 자가 소유 비율은 63.1%인데 한국은 58.7%입니다.


그래서 그게 나쁘냐? 그건 또 다른 문제입니다.



한국보다 자가 주택 소유 비율이 낮은 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를 두고 '주거 문제 국가'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독일은 한국에서 소위 '좌파'가 늘 칭송해 마지 않는 주거 문화를 보유한 나라 아닙니까?


나라마다 주거 문화와 전통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저 주택 소유 비율만 가지고 어느 나라가 좋고 나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정부가 모든 가구가 '우리 집'을 갖는 무조건 '1가구 1주택'을 꿈꾼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맨 첫 번째 그래프에서 본 것처럼 주택 담보 대출 비율(LTV)을 풀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빚을 갚을 능력이 되는데 당장 보유 현금이 없다고 집을 사지 못하는 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또 '국제적인 관점에서' 한국 사람이 주거비 부담이 시달린다고 판단할 근거도 부족합니다.


같은 이유로 다주택자를 범죄자로 몰아갈 필요 없습니다.


2018년 기준 통계청 '주택 소유 통계'를 보면 주택 소유자 1인당 평균 소유 주택은 1.09채입니다.


이 10% 못 되는 다주택자 때문에 '전세 끼고' 우리 집을 마련하겠다는 꿈을 막을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집을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지 않으면 정말 현금 부자 빼고는 집 못 삽니다.


이런 다주택자가 있기에 세입자도 우리 집 마련 꿈을 꾸는 겁니다.


그리고 역시 지난 번 포스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기 집에서 살지 않는 또는 못하는 이들 가운데는 원하는 입지에 원하는 가격 물건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전세를 사는 이들이 현재 집을 선택한 제일 큰 이유는 '직주근접(직장, 학교 등) 직장변동 때문'입니다.


이미 100%가 넘은 지 오래인 주택보급률은 의미가 없는 겁니다.


내가 살고 싶은 곳에 내가 살(買) 수 있는 집이 없는데 전국에 집이 차고 넘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당연히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에 공급을 늘려야 합니다.


이렇게 정책을 펼치려면 돈이 필요하고 결국 금융과 부동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니 추 장관 이야기에 도무지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추 장관부터 금부가 떼려야 뗼 수 없는 관계로 재산을 소유하고 있을 겁니다.


추 장관은 후보자 시절 재산이 14억9871만 원이라고 신고했습니다. 이 중 채무는 1억5000만 원이었습니다.


이 돈이 부동산 담보 대출과 관련이 있다는 데 현재 제 소유인 모든 주택을 걸겠습니다.


(네, 저는 무주택자입니,, ㅡ,.ㅡ)


다시 말씀드리지만 집은 원래 빚입니다.

  1. 본인은 "법무부 장관도 국무위원으로 국가 주요 정책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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