聰明不如鈍筆
총명불여둔필
assignment Scribble/.OLD

유서(遺書)

삶을 마감하는 방식을 생각합니다.

입버릇처럼 자살 이야기를 꺼냈지만 절실하게 고민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건 어떤 식이냐 하면 러시안 룰렛 게임을 즐기는 척 하면서도 실은 총알 하나 장전하지 않은 채 방아쇠를 당기는 검지에 공포가 그대로 드러나는 모양새입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에 우연히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가 자기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겨 버리는 그런 공포 말입니다.

저는 숙달된 사수가 못 되어서 이스라엘에서 만든 기관단총을 가지고서는 사람 하나 죽이지 못합니다. 설사 그 사람이 저 자신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숱한 연습으로 총알 세 발로 사람을 죽이는 게릴라들과는 전적으로 다른 존재입니다.

오히려 저는 망원렌즈까지 부탁된 저격용 총으로 멀리서 제 심장을 관통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근거리는 오히려 명중률을 떨어뜨립니다.


지금껏 숱한 단정 속에 살아왔습니다. 단정으로 제 삶이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정 속에서만 저는 자유로울 수 있다고 한 번 더 단정해도 될 만큼 저는 단정이 아니면 불안한 결론밖에는 얻어내지 못합니다.

이렇게 죽음을 앞두고 생각하건대, 그러한 단정이 불러일으킨 오해, 혹은 단정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지금껏 제 삶을 꾸려온 기본 원동력인 모양입니다.

하지만 죽음을 준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결단력입니다. 죽음의 방법에는 -死로 끝나는 어휘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습니다. 저는 되도록 제 스스로의 의지로 죽음의 방법을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여야 할 절박한 까닭도, 죽음에 대한 무모한 예찬도, 삶에 대한 깊은 회의도 아닌 다만 죽음에 대한 결단력, 즉 죽어야겠다는 의지가 필요했습니다. 그건 죽고 싶다는 욕망과는 또 다른 성질의 문제입니다. 그 어떤 당위나 욕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맹목적인 의지와 무분별한 결단력에 따른 죽음, 그것이 진정 삶의 무제나 세상과의 싸움에 무관하게 죽음을 선택하는 길이라 믿었습니다.


죽음은 그 무엇도 아닌 다만 삶의 종결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제게는 제 이름조차 가물합니다. 물론 당연하게도 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죽음의 공포 때문에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도 아닙니다. 기억하지 않겠다는 고집도 아닙니다. 그저 말 그대로 기억나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 어느 누구의 것과 조금도 다르지 못한 평범한 것이기에 기억해도 소용없을 테지만, 기억조차 나지 않으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죽음의 결단을 가장 가로막는 요소는 기억, 아니 구체적으로 밝히자면 존재에 대한 기억입니다. 죽는 사람에 대한 살아남은 이들의 기억, 또 죽는 자가 짊어지고 갈 살아남을 자들에 대한 기억.


죽음은 그저 삶의 종결일 뿐 존재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존재의 기억은 치열하게 살아남아 메아리를 만듭니다. 죽은 애인의 안부를 묻는 영화 속 메아리 같은 공허한 외침 말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죽은 자는 언젠가는 잊혀집니다. 아니 잊혀지게 마련입니다. 이름조차 없는 존재의 죽음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제게 이름은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이름을 완전히 잊기 위해 죽는 지도 모릅니다. 죽음을 결단하는 일에 있어 제일 중요한 건 바로 그 기억의 상실이었습니다. 기억, 존재에 대한, 특히 이름에 대한 기억 말입니다.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단정은 이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벽에 부딪힐 때마다 저 자신을 달래는 가장 핵심적인 어구는 바로 이름이었습니다. 이제 뻔뻔스럽게 기억나지 않는다 말하면서도 사실 제겐 그 무엇보다 그 이름이 소중했습니다.

그건 제 자신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뜻일 수도 있고, 또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지극히 저를 혐오한다는 뜻이 확실합니다. 혐오하는 존재의 이름을 사랑하는 난치병, 저는 늘 저 아닌 다른 존재를 동경했지만, 끝끝내 저 아닌 다른 무엇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건 순전히 이름 탓입니다. 저 스스로 제가 아닌 다른 이름을 거부했기에 끝끝내 다른 존재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이름의 굴레, 존재의 실존을 투영하는 양방향 필터, 쉽사리 물러서기에는 지금껏 버텨온 것이 아까운 못난 고집.


그러나 고집은 고집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에 고집을 부리냐 하는 문제입니다. 아니 고집의 대상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고집의 주체에 대한 문제입니다. 저는 주체의 소각을 통해 존재를 지켜내려 합니다. 제게 죽음은 이름으로 대변되는 주체의 기억 상실을 통해 존재를 부활시키는 일입니다. 이제 저는 이름으로부터 존재를 해방시킵니다.

해방이 될 생각에, 그 놀라운 기대감에 벌써부터 만세를 외치는 제 존재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지금껏 세상 그 누구로부터도 듣지 못했던 목소리입니다. 숱하게 들었던 존재의 목소리입, 하지만 희열에 성대의 긴장이 사라진 목소리는 가장 원초적인 태고의 그것입니다. 바로 세상에 지지 않았다는 당당한 포효입니다.


저는 세상에 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이기지도 못했습니다. 아니 지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세상과 싸운 적이 없습니다. 늘 운 좋게 피해 다녔고, 세상이 덤벼들 땐 용기 있는 척 오히려 세상에 서툰 협박만 되풀이했습니다. 하지만 놈의 안중엔 저 같은 건 없었습니다. 기권패는 사양합니다. 기권패보다는 KO패가 낫습니다.

하지만 이기고 지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겐 승패보다 싸움의 과정 자체가 중요합니다. 녀석과 맞닥뜨리고, 신경전을 펼치고, 초반 공격에 어느 쪽이든 상처를 입고, 반격에 반격을 거듭하기까지 그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 엉망으로 취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병을 건네는 창녀의 사람처럼, 죽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이 술을 마시는 방법의 하나였습니다. 40도 짜리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넘어갈 때의 화끈거림, 입 안 깊숙한 곳에 남은 알코올의 쓴 뒷맛, 살아 있는 것의 무기력함이 아닌 죽어 가는 것의 진정한 생명력, 알코올과 저는 한 패가 되어 희망과 마주합니다.


어쩌면 그런 절망, 설원 위에서 죽은 연인의 안부를 묻는 그런 절망, 잘 지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렇다는 답밖에는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저는 다시 한 번 묻습니다. 교통경찰의 눈을 피해 운전하면서 들이키는 술 한 잔, 사실 알코올은 제 편이 아니라 절망의 스파이입니다. 하지만 절망의 배신은 희망입니다. 저는 기꺼이 그 절망으로부터 배신당할 것입니다. 알코올의 존재는 눈물로써 받아들이며 위벽 깊숙한 곳까지 알코올의 공격을 용인합니다. 이러한 싸움의 과정을 통해 죽음에 더욱 가까이 다가갑니다.


이제 곧 숨이 가빠지겠죠. 호흡이 격렬해져 연수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될 것이고, 결국 연수는 호흡을 멈추라고 명령하게 될 것입니다. 격렬한 호흡이 유발한 질식사, 목에 남을 끈 자국 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아무 부를 이름도 없는 죽음 앞에 성대가 다친대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말을 떠나, 이름을 떠나, 알코올의 도움 없이도 이제 제 존재는 더욱 오롯이 서게 될 것입니다

길게 늘어난 혓바닥과 돌출한 눈동자, 붉게 충혈한 실핏줄, 그리고 마지막 배설까지. 조금은 초라한 모습으로 살아 있음의 마지막이 기억되겠지만 놀라지는 마십시오. 그건 다만 마지막으로 표출하는 최후의 생명력일 뿐입니다. 존재를 비겁하게 방치하느니 용감하게 보듬기 위한 최후의 제례의식일 뿐입니다.


저를 씻기지도 마시고 그대로 낡은 천 조각이나 하나 덮어주십시오. 묘비병도 필요 없습니다. 아니 묘비명은 절대 안 됩니다. 최대한 빨리 화장해 그다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을 골라 중턱쯤 커다란 바위 아래 뿌려주시면 됩니다. 그대로 바람에 날리고, 비에 씻겨 저는 진정한 제 자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진정 자유롭고, 진정 사랑할 줄 아는 그런 존재 말입니다.


여러 말에서 아침 인사는 밤새 돌아가시지 않았냐는 뜻입니다. 우리의 안녕, 이라는 표현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들 안녕히 계십시오.

부모님 정말 죄송합니다. 그 어떤 낱말도 이 죄송함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 미약한 언어의 굴레가 싫어서 떠나지만, 결국 이렇게나마 죄송함을 전합니다.

그리고 동생, 부족하게 먼저 떠나는 형을 대신해 부모님 잘 모시길, 최대한 나의 이름이 빨리 잊혀지도록 해주면 고맙겠다.

그리고 저를 미워하든 좋아하든 저를 알고 지냈던 분들, 저는 먼저 갑니다. 부디 저의 죽음을 즐겨 주십시오. 잿빛 장례식 대신 원색의 파티를 즐기십시오. 그리고 파티가 끝나는 순간 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시길, 저를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시길 진정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름이 불릴 나 자신, 훌륭하게 최후를 맞이하길, 조금도 비겁해지지 않길…

그럼 이만 저는 갑니다. 모두들 안녕히.
Tags 

댓글, 44

  • 이전 댓글 더보기
account_circle
vpn_key
web

security

mode_edit
Scribble/.OLD | 카테고리 다른 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