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박정희 대통령은 기업 사채를 전면 동결하고 기업 예금 이자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8·3 조치를 발표했다. 사채업자가 기업에 빌려준 돈을 받으려면 은행 계좌를 만들고 돈의 출처가 깨끗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기업이 세금을 물지 않으려면 회사 자본금을 늘리거나 새 회사를 만들어야 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금융자본이랄 게 없었다. 이 때문에 회사들은 사채를 끌어다 썼고 높은 이자를 감당 못 해 부도 위기를 시도 때도 없이 맞아야 했다. 부도를 막으려면 가용 자금을 최대한 은행에 넣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사채 시장에서는 당장 반발했다. 당시 사채 대부분은 정치권 실세들 비자금이었다. 사채동결 조치에도 기업인들은 사채업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던 상황. 대통령에게는 주먹이 필요했다. 그해 10월 17일 박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 하고 헌법 효력을 정지시켰다. 10월 유신이었다.
이후 1979년까지 박 대통령 재임 기간 우리 경제는 연평균 10.3% 성장했다. 같은 기간 세계 경제 성장률은 4.1%였다. 세금을 피하려 자본금을 늘리고 자회사를 세웠던 한 회사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전제품을 가장 많이 판다.
유신이 옳은 일이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유신은 분명 잘못한 일이다. 다만 과연 역사를 공과 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있는지 궁금하다. 유신이 없었대도 우리가 아프리카 가봉보다 잘 사는 나라가 됐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1971년 가봉의 1인당 국민소득은 702달러, 우리는 302달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