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北高-光州一高(경북고-광주일고), 숙명의 격돌'이라고, 정말 대문짝만하게 '미다시'를 뽑은 '日刊스포츠'로 모자를 만들어 李선배와 나는 하나씩 머리에 썼다.(중략)/"광주일고는 져야 해! 그게 포에틱 자스티스야."/"POETIC JUSTICE요?"/"그래."/이 선배는 나의 몰지각과 무식이 재밌다는 듯이 씩 웃는다./그의 물기 젖은, 싼뿌라찌 가짜 이빨에 햇빛이 반짝거렸다./나는 3루에서 홈으로 生還(생환)하지 못한, 배번 18번 선수를 생각하고 있었다.(황지우 '5월 그 하루 무덥던 날')
여전히 난리다. 그러나 예전만은 못 하다. 고교 야구 전성기부터 프로 출범 초기까지 야구는 그저 야구가 아니었다. 삼성과 해태가 맞붙은 1986년 한국시리즈. 광주 무등야구장을 찾은 팬들은 선수들 이름 대신 '김대중, 김대중'을 외쳤다.
황지우 선생님은 1983년 광주일고가 지는 게 '포에틱 자스티스'라고 했지만 1980년대 프로야구 최강팀은 광주 연고 해태 타이거즈. 반면 권력의 중심 TK 연고 삼성 라이온즈는 2002년까지 단 한 번도 한국시리즈서 우승하지 못했다. 이런 건 어떤 자스티스라고 불러야 했던 걸까? 26년 전 오늘 신문에 성난 대구팬들이 불지른 해태 버스 사진이 실렸다. (컬러 사진을 보시려면 여기
http://bit.ly/WFe4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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