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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신문을 읽읍시다 #54 열혈 청년 김상옥


대학로에 가본 지 오래라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는데, 마로니에 공원 한켠에 김상옥 열사 동상이 서 있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1923년 1월 12일에 벌어졌고, 종로통에 있던 신문은 호외를 펴낸 뒤 1월 14일자에 다시 상보를 실었다. 이른바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

김 열사는 상해에서 의열단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독립 운동에 나섰다. 국경에서 일본 순사를 때려눕힌 뒤 귀국한 그는 폭탄 테러(용어 때문에 오해마시라)를 기획했다. 그의 1차 목표는 서울역에 도착하는 사이토 총독. 그런데 일행 한명이 불심검문에 체포되면서 일이 틀어졌다. 이에 김 열사는 독립운동가들에게는 남산 공안분실과도 같았던 종로서 경무계에 폭탄을 던지기로 마음먹고 이를 실행한다. 그리고는 경성의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져 사이토 총독을 때려눕힐 때를 기다렸다.

그는 매부 집으로 몸을 피했는데 하필 그 집에는 순사 오빠를 둔 처자도 살고 있었다. 순사 14명이 곧 집을 포위했다. 김 열사는 총을 쏘며 이들을 물리치고 몸을 피했다. 어디 멀리 도망쳤어도 좋으려면 그는 스님으로 변장한 채 다시 서울역을 향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순사 1000여 명이 그를 잡으러 나섰다. 김 열사는 3시간 35분 동안 쌍권총을 들고 추격전을 벌였다. 일본 정예 순사들이 그의 총탄에 무릎을 꿇었지만 끝내 역부족. 그는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뒤 마지막 총알을 자기 머리에 쐈다.

1년 뒤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그는 묘비에 주소가 상해라고 썼다. 죽어서도 혼이 돼 독립운동을 할 테니 묘비명 주소를 상해로 해달라고 부탁했던 것. http://bit.ly/Y4kzNn 그 누가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을 나약하다고 했는가. 그저 한 사람, 한 사람이 항거하기에 역사의 흐름이 너무 도도했던 건 아닐까

기사 읽기: http://bit.ly/VYDXW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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