聰明不如鈍筆
총명불여둔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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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의심 불신


• 수습기자 교육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의심을 넘어) 불신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습이 끝나고 우리 어무이가 내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넌 왜 그렇게 사람 말을 못 믿냐"는 거였다. 나처럼 수습 교육을 대충 받은 인간도 그렇게 바뀌었다.

• 보통 기자들은 수습 때 취재력이 제일 좋은데, 왜냐햐면 정말 많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1)거짓말을 정말 진짜인 것처럼 눈썹하나 깜짝 않고 떠드는 인간들이 차고 넘치고 2)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아주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희망을 찾으려 애쓰며 3)그래서 이들을 등쳐 먹는 인간들도 많다는 걸 몸소 느끼게 때문이다. 내 경우 성선설 지지자에서 성악설 신봉자로 바뀔 지경이었다.

•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대니엘 길버트 미국 오스틴텍스사대 연구팀이 밝혀낸 것처럼 인간 두뇌는 일단 보고 듣고 느낀 건 모조리 믿어버리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언론에서 떠들면 일단 믿고 본다.

• 특히 에릭 홈스봄이 이야기했던 '소설화' 과정에 아주 능수능란한 취재원이 있다면 불신이 생명인 기자들조차 홀딱 속아 넘어가곤 한다. 문제는 자기가 믿던 게 사실하고 다를 때다. 이럴 때는 재빨리 사실을 인정하는 게 제일 좋다. 그럴 때 계속 고집을 꺾지 않으면 인지부조화니, 자기합리화니 하는 심리학 용어와 마주하게 된다.

• 말하자면 기자실 자기 자리에 엉덩이 깔고 책상 머리에 앉아서 받아쓰기만 하는 게 기자가 하는 일 같아도, 실제로 인간 본능과 어긋나는 일을 처리하느라 에너지를 쥐어짜내고 있다는 것. 그래서 기자라는 인간들 대부분이 시니컬하고 성격 나쁜 이미지로 굳어져 간다. (이 역시 대응 편향·correspondence bias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 그러니까 4개 구장 경기가 모두 일찍 끝난 날 술 못 먹는 야구 당번 기자는 퍽 심심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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