聰明不如鈍筆
총명불여둔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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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천노 불이과


•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쓸 때마다 늘 가슴에 담아두는 말은 "칼럼리스트가 되기 전에 리포터부터 돼라'던 조언이었다. 입사 축하연 자리에서 한 기자 선배가 해준 말씀이다. (일전에 같이 술 마시면서 여쭤보니 정작 이 말을 해준 형은 잘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좋은 충고라고 생각한다.) 한 문장, 한 문장 쓸 때마다 이게 내 생각인지, 아니면 그래도 내 주관이 판단하기에는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많이 고민하며 기사를 썼다. (역설적으로 2년차 때 회사에서 제일 기자 칼럼을 많이 쓴 기자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녀석이 자기 생각을 못 쓰고 있었으니…)

• 그러다 스포츠부에 왔더니 다른 세상이 열렸다. 물론 이 세상 그 어떤 기사도 '이건 써야 해'하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주관적 판단이 들어가는 거다. 그러나 스포츠 기사는 기본적으로 '나만 본 것'이라는 게 잘 없다. '내가 다르게 본 것'이 있을 뿐.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다. 게다가 어찌됐든 짧지는 않은 시간 동안 펜대를 놓지 않았던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기자라지만, 편집국도 쉬었다 돌아오면 퍽 어색한 곳이다.) 선배께 조언을 구했더니 "그게 스포츠 기자만 스포츠 라이터(writer)라고 부르는 이유 아닐까."

• 오늘도 나는 내가 원래 내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세상에 스포츠처럼 세상만사에 빗대기 좋은 소재도 잘 없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굳이 나까지' 슬픔과 분노, 비탄의 확성기를 자처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불이 났을 때 모두가 '불이야'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오히려 피해가 더 커진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저 묵묵히 내 입 안에 밥숟갈을 떠 넣는 게, 비록 그게 팔리지 않는 이야기가 된다고 하더라도, 길게 보면 우리 사회가 바로 서는 길이라고 믿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포츠 '기자'보다 '스포츠' 기자를 택한다.

• 물론 이게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이 사실 많은 이들이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일 테고,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화를 옮긴다고 달라질 건 없다. 그저 똑같은 실수를 두 번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게 공자님께서도 이렇게 불천노, 불이과라고 대구(對句)로 남기신 이유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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