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경기 안산시 단원고 학부모님들을 비롯해 이번 세월호 참사로 소중한 분을 잃으신 모든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건넵니다. 기적이 꼭 일어날 겁니다.
기적을 바라는 마음 못지 않게 아픈 마음으로 기자 한 사람으로서 국민들께 사죄 드립니다. 기자들이 지나쳤습니다.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습니다.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
저는 기자라는 직군을 대표할 만한 지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자격도 못 됩니다. 하지만 475명이 타고 있던 배가 바다 밑으로 가라 앉은 뒤로 나온 언론 보도를 접하고 "정자(精子)와 기자의 공통점은 사람 되기 어렵다는 것"이라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떤 기자가 소셜네트워크(SNS) 트위터에서 생존자들 안부를 알리고 있던 이에게 "혹시 침몰 당시 배 안에 있던 학생들이 찍은 사진이 있나요?"하고 물은 걸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저라고 왜 모르겠습니까? 저 사진 구했으면 데스크한테 칭찬 많이 받았을 거고, 인터넷 홈페이지 트래픽도 엄청 올랐을 겁니다. 그래도, 그래도 말입니다. 세상에 사람 목숨보다 귀한 특종이라는 게 어디 있을까요? 더욱이 아직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 일인데 말입니다.
제가 얼굴도 모르는 저 기자에게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 건 제가 처음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기사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는 것처럼 1994년 10월 21일 서울에서 성수대교가 무너졌습니다. 무학여고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죠. 이튿날 동아일보에는 '하늘로 떠난 착한 딸'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기사였습니다.
"엄마 아빠께 불효를 너무 많이 저질러 정말 후회스럽습니다. 아빠가 저를 때리셨을 때 저보다 100배, 1000배나 더 마음 아파하실 아빠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사흘 전 자신에게 '사랑의 매'를 들었던 아버지 앞으로 가슴을 찡하게 울려오는 편지를 써놓은 서울 무학여고 2학년 이연수 양(16)은 이를 미처 전하지도 못한 채 꽃다운 나이에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21일 아침 성수대교 붕괴대참사로 등굣길에 참변을 당한 이 양의 가방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편지만이 가을비에 젖은 채 처연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입사 후 이 기사를 쓴 선배 기자들을 취재해 보니 역시나 치열한 기사 경쟁을 거쳤다고 합니다. 당연한 일이죠. 특히 경쟁지 사회부 시경 캡(사건팀장)이 딸만 둘인 '딸딸이 아빠'라 이 기사를 보고 눈물을 쏟으며 '왜 이런 기사를 놓쳤냐'고 후배 기자들을 질책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깊은 울림을 주는 기사였습니다.
요즘엔 왜 이런 기사를 보기가 힘들까요? 아이들 생사도 모르는데 어떻게 피해자들이 보험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기사가 버젓이 등장하는 걸까요? 아니, 그 정도도 애교입니다.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유족과 관계자들의 비통함이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대형 선박 사고로 화제를 모은 영화들이 새삼 화제를 모으고 있다"는 기사까지 나왔습니다. 무엇이 그리 급해 문장마저 저렇게 엉망으로 써야 했을까요? 한국 사회에서는 기자들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서 정말 너무 멀리 떨어진 모양입니다. 이런 기자 구실 말입니다.
"제4 부(府)로서 명성을 굳건히 하는 것. 언론인은 명예로운 직업이라고 인정받는 것. 위대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진짜 토론을 이끌어 내는 것. 가십적이고 선정적인 기사에 종말을 고하는 것. 바보에게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 클릭 숫자가 아니라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열정과 에너지를 쏟는 것(미국 드라마 '뉴스룸')."
저부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기자여서 죄송했습니다.
원래 '지금 SNS에서는'이라는 꼭지용으로 준비했던 기사였는데 쓰지 말라는 말 듣고 블로그에 남겨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