聰明不如鈍筆
총명불여둔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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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탕과 뚫훍송

제가 사춘기가 되면서 원래 창고처럼 쓰던 방이 제 방이 됐습니다. 이 방에 책꽂이가 하나 있었는데, 아마도 할아버지가 아버지 사춘기 시절에 사주셨음직한 도서 시리즈가 꽂혀 있었습니다. 주로 세로쓰기로 씌어있는 책들이었죠. 이어령 전집도 있었고, 세계명작선 같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어린 시절 제 마음을 사로잡은 시리즈는 바로 黑人文學全集이었습니다. 어찌하여 흑인 문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책이 '60년대에 나왔는지 당시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마땅히 할 것이 없는 밤이면 늦도록 한권씩 뽑아서 열심히 읽고는 했습니다.

이제 인터넷 발달로 구글링을 해보니 이렇게 생겼네요.



아마도 당시 이 책을 읽은 것이 제게는 WASP으로 대변되는 서구와 미국을 뛰어 넘어 또 다른 세계를 보는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심은 후에 아랍과 이스패닉 등 우리 나라에서 비주류로 분류된 문화권에 대해 공부하게끔 만드는 원동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느끼게 된 건 '지배자' 또는 '다수'의 시선이 참 폭력적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폭력에 대한 항거로서 문화상대주의를 언급하고는 하지만, 사실 이 역시 피식민지에 대한 식민자들 논리일 뿐이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습니다. 사실 문화인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원활한 식민지 경영을 위해서 시작된 것이니까요.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프랑스 여배우 브리짓 바르또 氏는 우리 보신탕 문화를 비난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곧잘 그네와 우리가 살아온 문화가 다르다든지 또는 너희는 이런저런 음식을 먹으면서 왜 우리는 못 먹게 하냐고 항변하고는 합니다. 모두가 다 문화상대주의에 대한 몰이해를 꼬집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러는 사이 우리나라엔 애초 존재하지 않았던 소위 '애견문화'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보신탕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기 껄끄러워진 것도 사실이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우리 품종이 아닌 서양 품종을 수입해 키우기 시작합니다. 보신탕을 먹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이런 식으로 그들이 주입한 문화가 더욱 굳건해 진다는 데 그 폭력성의 실체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 흑인문학전집에 어떤 글이 실려 있었는지, 어떤 내용이었는지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글들을 모른다고 해서 남들로부터 비난 받을 일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만과 편견'의 내용을 모른다거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 무엇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건 더러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 들어 각종 게시판에서 아랍권 국가나 인도, 파키스탄 등의 대중문화를 조롱하는 글들이 많이 보이고는 합니다. 단지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조롱하고 놀리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물론 저 역시 그에 동참하는 못난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런 문화 역시 그곳에 사는 이들에게는 자신이 삶을 즐기는 방식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분명 우리가 이들 국가에 대해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향한 막연한 우월감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데이빗 레터맨이나 제이 레노가 그들의 토크쇼에서 우리 문화를 조롱할 때 불쾌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그들과 무엇이 다른지 한번쯤 반성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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