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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씨가 유독 외자 이름이 많은 이유

이름을 외자(한 글자)로 지을 수 있는 것 자체가 특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걸 이해하시려면 피휘(避諱) 또는 기휘(忌諱)가 뭔지 아셔야 합니다. 휘는 이름이라는 뜻이고 피는 피하다, 기는 꺼리다는 뜻입니다. 동양에서는 예전에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쓰는 걸 피하고 꺼렸습니다. 우리가 부모님이나 어르신 성함을 말할 때 '김 ○자 ○자'처럼 말해야 예의바르다고 생각하는 게 이 영향을 받은 겁니다.

이게 얼마나 심했냐면 대구(광역시)는 원래 한자로 '大丘'라고 쓰다가 18세기에 '大邱'로 바뀌었습니다. 공자 선생 본명이 공구(孔丘)였거든요.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에서 함부로 성인 이름을 쓸 수 없으니 소리가 같은 글자로 바꾼 겁니다.

특히 왕이나 황제 이름을 쓰는 건 금기 중 금기였습니다. 당나라 태종 이름이 이세민(李世民)이었기 때문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관음보살이 됐습니다. 왕 이름을 쓰지 못하니 백성들이 왕 이름을 알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과거 시험을 보러 온 선비가 답안지에 왕 이름을 썼다가 의문의 탈락을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쓰지 못하는 글자가 늘어나면 백성들이 불편한 게 당연한 일. 그래서 왕은 이름을 외자로 지었습니다. 그것도 잘 쓰지 않는 한자를 골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TV 연속극으로 유명한 정조대왕 이름은 산(祘)입니다. 이 글자는 계산하다 할 때 산(算)하고 의미가 똑같지만 잘 쓰지 않는 글자입니다. 이게 시간이 흐르면서 이름을 한 글자로 지을 수 있는 것 자체가 특권이 됐습니다.

그런데 '농구 대통령' 허재를 비롯해 허씨들은 이름이 한 글자인 일이 많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이건 양천 허씨 특징입니다. (서울 양천구 할 때 그 양천 맞습니다.) 이 가문 출신 허선문(837~?)은 후삼국시대 왕건과 견훤이 한강 유역을 두고 패권을 다툴 때 왕권을 지원한 공로로 고려 개국 공신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왕건은 허선문 일파에 준(準)왕족 지위를 보장했고, 대를 걸러 이름에 외자를 쓸 수 있게 했습니다.

이들은 여기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이 신라시대 허황후 이후로 줄곧 왕족이었음을 주장하며 계속 외자 이름을 고수했습니다.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 '허구' 같은 이야기. (수로왕비 허황옥 후손은 김해 허씨지만, 모든 허씨는 이 집안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실제로는 이름이 두 글자인 이들도 족보용 외자 이름을 따로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흡좀무'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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