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伊藤) 공작이 청나라 하얼빈(哈爾濱)에서 오늘 정오에 한인(韓人)이 쏜 총탄에 맞았다."1929년 오늘자 동아일보 4면 기사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가 있다. 저기서 이토 공작은 당연히 이토 히로부미 당시 조선 통감. 한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안중근 의사다. 안 의사가 이토 통감을 쏜 건 1909년 10월 26일이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 굳이 신문에 언급했던 이유는 뭘까./p>
당시 동아일보에는 '신문의 신문 - 과거의 금일'이라는 꼭지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버전 '옛날 신문을 읽읍시다'였던 것. 주로 대한민보 기사를 인용한 이 시리즈는 이해 9월 25일 시작해 11월 21일에 끝이 났다. 주로 안 의사 소식을 다뤘기 때문에 동아일보에서는 "안 의사 의거 20주년을 위해 만들어진 특집이었던 것 같다"고 추측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1920년 4월 1일 창간했기 때문에 이 소식을 실을 수는 없었다.
기자 채용 시험을 진행하다 보면 '사관이 되겠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사실 나도 곧잘 '내 손자가 이 기사를 읽고 할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맞다. 이게 역사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얘기지만) 결국 지금 여기서 잘 기록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누군가는 우리가 쓴 기사를 근거로 역사를 논할 것이다. 그게 이제 티끌만큼 남아 있는 기자 권력에 대한 의무일 터다. 그러니까 이 글은 이 회사에서 만 8년을 버티기까지 이틀을 남기고 써보는 자경문(自警文).
※역시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이 글은 타카피 '나는 뜨겁다'를 들으며 썼다. "거짓에 속지 말고 진실을 바라보며 뜨거워져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