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와 아내 혜경궁 홍씨가 고이 잠들어 있는 융릉(隆陵). 문화재청 홈페이지
경기 수원시가 스스로 포장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바로 '효(孝)의 도시'.
여기서 효는 조선 정조(1752~1800)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1735~1762)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1735~1815)를 극진히 모셨던 걸 뜻합니다.
1776년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경기 양주목(현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拜峰山)에 있던 사도세자의 무덤 이름은 수은묘(垂恩墓)에서 영우원(永祐園)으로 바뀝니다.
조선 시대에 왕자나 공주(옹주)의 무덤은 묘(墓)라고 불렀고, 왕의 사친(私親) 그러니까 친부모 무덤은 원(園)이라고 부르던 전통에 따른 조치였습니다.
이로부터 13년 뒤인 1789년 정조는 영우원을 수원도호부(현 경기 화성시)에 있는 화산(華山 또는 花山)으로 이장(移葬)한 뒤 현륭원(顯隆園)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1795년까지 7년 동안 주로 나무를 심는 걸로 이 무덤 조경(造景)사업을 진행했습니다.
MBC 연속극 '이산'에서 정약용 역을 맡았던 배우 송창의 씨(왼쪽). MBC 화면 캡처
공무원은 예나 지금이나 '공문'으로 말하는 직업. 현륭원에 나무를 심을 때마다 식목부(植木簿)에 하나 하나 기록을 남겼습니다.
조경 작업을 모두 마친 어느날 정조가 다산 정약용(1762~1836)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7년 동안(1789~1795) 8읍(수원·광주·용인·과천·진위·시흥·안산·남양)에서 현륭원에 심은 나무의 장부가 수레에 실으면 소가 땀을 흘릴 정도 1인데, 그 공로는 누가 더 많으며, 나무의 숫자는 얼마인지 아직도 명백하지 않으니 1권이 넘지 않은 범위에서 네가 명백하게 정리하라.
이렇게 많은 장부를 어떻게 한 권에 정리할 수 있을까요? 정민 한양대 교수(국문학)는 한국일보에 이렇게 썼습니다. (kini註 - 맞춤법 등은 수정)
다산이 아전을 불렀다. “저기 저 공문을 고을별로 분류해주겠는가?” 얼마 후 분류를 끝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음. 수고했네. 그럼 각각의 묶음을 연도별 날짜순으로 정리해 주게.”
이틀 만에 산더미 같은 문서가 여덟 고을별로 구분되어 날짜순으로 정렬되었다. 그러자 다산이 표 여덟 장을 건넸다. 장마다 고을 이름이 상단에 적혀있고, 그 아래에는 세로 칸에 나무 이름이 적혀있고, 가로 칸은 연도별로 날짜를 적게 만든 빈 표였다. “이제 저 공문서에 적힌 내용을 이 표에 옮겨 적어 주게나.”
공문서에는 몇 월 며칠 어느 고을에서 어떤 나무를 각각 몇 그루씩 심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미 날짜별로 정렬되어 있던 문서라, 한 장의 공문은 빈칸 하나에 숫자를 옮겨 적기만 하면 되었다. 산더미 같은 공문을 표에 옮겨 적는 작업도 며칠 만에 끝났다.
고을별 누계가 끝난 표 8장을 받아 든 다산이 다시 빈 표 한 장을 건넸다. 세로 칸에는 여덟 고을의 이름을 썼다. 가로는 모두 12칸이었다. 7년간 6개월 단위로 두 칸씩 잡되 첫해와 마지막 해는 절반이 채 못 되므로 한 칸만 두었다.
다산이 말했다. “이제 마무리하세. 앞서 여덟 장의 표에서 6개월 단위로 심은 나무의 숫자를 이 한 장에 집계해 주게.”
이렇게 정리하고 났더니 헌륭원에 소나무(松) 노송나무(檜) 상수리나무(橡) 등 총 1200만9772그루를 심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에 정조는 아래와 같이 다산을 칭찬했습니다.
1권으로 상세하게 기록할 수 없을 것으로 알았는데, 그렇게 많은 분량의 문서를 너는 종이 한 장에다 마무리하였으니, 참으로 훌륭하다.
이 내용은 현륭원 조경사업 결과를 정리한 '식목연표(植木年表)' 에 다산이 직접 써서 붙인 발문(跋文)에 들어 있습니다.
요즘 스타일로 말하자면 다산은 마이크로소프트(MS) 엑셀 같은 스프레드시트 그 중에서도 '피벗 테이블' 원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숫자에 밝은 이들은 도박에 빠지는 일도 많습니다.
다산 역시 젊은 시절 도박을 즐겨서 투전(鬪牋)과 골패(骨牌)를 연구 대상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을 보면 진주 촉석루에서 기생들과 쌍륙(雙六) 판을 벌여 3000전을 땄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이렇게 여러모로 다산은 요즘에 태어났더라면 훨씬 재미있게 살다 가셨을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인물.
게다가 그는 정조가 '아름답다'고 칭찬할 만큼 미남이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배우 정해인 씨(31)가 다산의 곤손(昆孫) 그러니까 6대손입니다.
물론 6대손이면 다산으로부터 유전자를 64분의 1만 물려받은 것이지만 비교할 수 있는 다름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아, 헌륭원은 1899년 족보상 현손(玄孫)인 고종(1852~1919)이 사도세자를 장종(莊宗)으로 추존(追尊)하면서 융릉(隆陵)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릉(陵)은 왕 and/or 왕비 무덤에 붙는 글자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 모두 MS 엑셀 공부를 열심히 합시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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