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여성 한 명이 평생 아이를 한 명도 낳지 않는 나라입니다.
통계청은 올해 4월까지 시·구청 및 읍·면·동 주민센터에 신고한 출생 자료를 정리해 '2018년 출생 통계'를 확정해 28일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가임 여성(15~49세)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출생아 숫자, 즉 합계 출산율은 0.98명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1970년 통계청에서 출생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뒤로 가장 낮은 숫자입니다. 이전 기록은 2017년에 기록한 1.05명이었습니다.
한국은 2017년 이미 세계은행에서 합계 출산율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록을 모두 가지고 있는 188개국 가운데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따라서 지난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0점대 합계 출산율을 기록한 나라일 거라고 추론해도 크게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사실 1인당 GDP가 늘어나면 합계 출산율이 떨어지는 건 전 지구적인 현상입니다. 1인당 GDP를 로그 척도로 x축에 합계 출산율을 y축에 놓고 점을 찍어 보면 추세선이 우하향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점 크기는 인구 숫자입니다.)
그래도 한국은 그 정도가 심하고 합계 출산율이 떨어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지난해 태어난 아이는 총 32만6822명으로 2017년 35만7771명보다 8.7% 줄었습니다. 만약 올해도 같은 비율로 출생아가 줄어들면 예상 신생아는 29만8550명으로 30만 명 선이 무너지게 됩니다. 2016년(40만6243명)만 해도 한 해에 40만 명이 넘게 태어났지만 3년 만에 신생아가 10만 명이 넘게 줄어드는 겁니다.
이렇게 아이를 적게 낳는 게 문제일까요? 네, 절대 다수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육아정책연구소(KICCE)에서 지난해 15세 남녀 3000명을 설문조사해 펴낸 '행복한 육아문화 정착을 위한 KICCE 육아정책 여론조사'에 따르면 출생아 수 감소에 대해 63.5%는 매우 심각한 문제, 27.6%는 다소 심각한 문제라고 답했습니다. 총 91.1%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이도 더 많이 낳고 싶어 합니다. 이 KICCE 설문 응답자 가운데 기혼 남녀 1821명이 생각한 이상적인 자녀 숫자는 평균 2.3명이었습니다. 실제 자녀 숫자는 1.8명으로 이상 수치보다 21.7% 적었습니다. (이 조사 대상에는 50대 이상도 들어 있습니다.)
아이를 적게 낳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이상적인 자녀 숫자도 많은데 실제로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그냥 통계만 가지고 따지면 한국에서 아이가 적게 태어나는 제일 큰 이유는 결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혼 뒤에 낳는 아이 숫자도 줄어든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마도 유교적 관점 때문에) 법적 부부가 아닌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 그러니까 '혼인 외 출생아' 비율이 2.2%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으면 일단 아이를 낳을 일이 없습니다.
통계청에서 같은 날 발표한 '2019년 6월 인구동향(출생, 사망, 혼인, 이혼)'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혼인 건수는 총 12만121건으로 역시 1970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뒤 가장 적었습니다. 2015년(30만2828건)만 해도 한국에서는 한 해에 30만 명이 넘게 결혼했지만 지난해에는 25만7622건으로 줄었고 올해는 더욱 줄어들 전망입니다.
또 결혼을 해도 늦게 합니다. 지난해 여성 평균 초혼 연령은 30.4세까지 올랐습니다. 이 나이는 2016년(30.1세) 처음 30세를 넘었고, 2017년에는 30.2세였습니다. 결혼을 늦게 하는 건 남자도 마찬가지. 1998년 28.8세였던 남성 평균 초혼 연령은 2003년 30.1세로 서른 살을 넘겼고 지난해에는 33.2세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면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결혼을 하지 않고, 또 늦게 하는 이유는 뭘까요?
정답은 연애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건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할 겁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지난해 펴낸 '2018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 조사에 응한 20~44세 미혼 남녀 총 2464명(남성 1140명, 여성 1324명) 가운데 71%(1750명)가 '이성교제 상대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남성은 결혼 의향이 있는 경우(670명)에도 64.3%(431명)는 연애 중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연애를 억지로 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연애 중이 아닌 이들이 이성교제를 하지 않는 주된 이유로 제일 많이 꼽은 건 '적당한 상대를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성은 33.8%, 여성은 32.5%가 이 항목을 골라 총 33.1%가 적당한 상대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다음은 '이성교제의 필요성을 아직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로 총 23.3%(남성 20.1%, 여성 26.1%)가 이 항목을 선택했습니다. 20대 초반 여성은 이 항목을 고른 비율(32.1%)이 아직 적당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23.3%)는 비율보다 높았지만 나머지 연령대에서는 전부 적당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는 답변이 제일 많았습니다. 남성은 모든 연령대에서 그랬습니다.
남녀가 가장 차이를 보이는 항목은 '금전적 부담 때문에'였습니다. 남성은 9.7%가 돈 문제를 연애를 하지 못하는 이유로 꼽았지만 여성 가운데는 1.5%만 이 항목을 선택했습니다.
배우자 조건 역시 이 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같은 조사에서 '귀하는 배우자 조건 중 경제력(소득, 재산 등)이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하고 물었을 때 '매우 중요하다' 또는 '중요하다'고 답한 남성은 53%였지만 여성은 92.7%로 올랐습니다.
'직업(직종 및 직위)'에서 남성 49.9%, 여성 87.1%로 차이를 보인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겁니다. '학력'에 대한 태도 차이(남성 31%, 여성 55%)도 마찬가지. '가정환경'(남성 75.1%, 여성 89.8%)도 경제력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청년세대의 열악한 경제상황 특히, 여성의 일자리 불안 등 여성의 부정적 경제 여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 결과"라고 해석했습니다.
이어서 "모든 항목들에서 여성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남성에 비해 높았다는 점도 흥미로운 결과"라며 "여성들이 혼인 이행과 배우자 선택에서 남성에 비해 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건 여전한 한국 사회 특징이기도 합니다. 탁현우 한국행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17년 한국행정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저출산 대책: 미혼남녀의 결혼의향과 지연에 미치는 영향요인 분석'에 "여성은 자신보다 나은 경제적 자원을 지닌 남성을 찾는 것이 한국과 같은 남성생계부양자모델(male bread-winner model)의 결혼 문화라고 볼 수 있는데, 남성의 취업난과 여성의 지위상승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화가 지속되면서 만혼과 비혼을 가져오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고 썼습니다.
이어서 "남성 부양자 모형으로 인해 여성과는 달리 남성은 경제적인 안정성이 결혼의향에 영향을 주는 것을 알 수 있다. 비혼이유와 관련하여 여성의 경우 경제적 문제 때문에 비결혼 경우 오히려 결혼의향이 139% 높게 나타나고 있어, 경제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결혼을 활용하거나,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결혼을 할 마음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습니다.
따라서 정부에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만혼(晩婚)과 비혼(非婚)을 줄일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겁니다. 결혼 생각이 있는 미혼은 남녀 모두 '자녀가 꼭 있어야 한다'거나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비율도 높았습니다.
정부에서도 이를 모르지 않습니다. 정부는 2020년까지 정책 토대가 되는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2016년 발표하면서 만혼과 비혼 문제 해결을 통한 출산율 제고를 정책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눈 높은' 미혼 여성에게 미혼 남성이 '적당한 상대'가 되도록 하려면 정부에서 어떤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할까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확실한 길은 신혼집 마련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앞서도 인용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 2177명 중 27.9%가 가장 필요한 결혼 지원 정책으로 '신혼집 마련 지원'을 꼽았습니다.
이 연구원은 15~49세 기혼 여성 1만133명을 대상으로도 같은 설문을 진행했는데 이 때도 신혼집 마련 지원이 제일 필요하다는 의견이 39.3%로 제일 높았습니다.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인구경쟁력분과 위원이기도 한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2015년 세계미래포럼 발표문을 통해 "현재 혼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들 중 하나가 바로 높은 주거비용"이라면서 "물론 지금도 정부는 전세금 대출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인생을 대출을 가지고 시작하게 만드는 정책이 실효를 거둘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필요한 것은 대출지원이 아니라 임대주택을 마련하는 것이고 그것도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임대주택환 환경을 조성하여 공급하는 것"이라면서 "그래서 혼인을 하면 목돈의 부담 없는 임대아파트를 제공하고 자녀가 출산하면 임대 기간을 연장하고 다시 자녀가 또 출산하면 임대 기간의 연장과 함께 더 큰 임대아프트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아주 많은 젊은이들이 혼인을 인생의 득이라게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정말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아니, 주거 문제를 해결하면 정말 아이를 많이 낳을까요?
싱가포르를 보면 꼭 그렇지 않습니다.
싱가포르는 올해 2019년 현재 전체 국민 중 91%가 자기 집에 사는 나라입니다. 정부에서 HDB(Housing & Develpment Board) 공영 아파트를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하기에 가능한 결과. 게다가 이 나라는 석 달 안에 결혼 계획이 있는 예비 부부에게 우선적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2017년 기준으로 싱가포르 합계 출산율은 1.16명으로 세계은행에서 합계 출산율과 1인당 GDP를 모두 확보하고 있는 188개국 가운데 185위였습니다. 심지어 '세이브 더 칠드런'은 지난해 싱가포르가 전 세계 175개국 가운데 가장 아이를 키우기 좋은 나라라고 평가했지만 싱가포르 사람들도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참고로 이 조사에서 한국도 아이슬란드, 이탈리아와 함께 공동 8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세이브 더 칠드런 기준이 이상하거나 아니면 한국 사람들이 이 좋은 조건에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는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도 들어 있습니다.
이 연구원은 먼저 조사 대상 1만1009명 전체에게 자녀 필요성에 대해 묻고 이 중 '없어도 무관하다'고 답한 10.6%(1896명)에게 다시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결과 제일 많은(25.3%) 답변을 받은 건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였습니다.
미혼 남녀 역시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아이가 행복하게 살기 힘든 사회여서'를 선택한 비율이 28.3%로 제일 높았습니다.
아주 깜짝 놀랄 결과는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은 본인 스스로는 행복하다고 느껴도 한국 사회가 전체적으로 '헬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한국아동패널연구 데이터에 따르면 10차(2017년) 조사에 참여한 아동 1480명(2008년 출생)에게 '가족에 대해 생각하면 어떠니?'라고 물었을 때 78.2%에 해당하는 1157명이 '매우 행복해요'라고 답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어른들 생각은 달랐습니다. '행복한 편이예요'라는 답변도 19.8%(293명)로 98%가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이는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라는 물음에도 80.6%(1193명)이 '매우 그렇다', 17%(251명)가 대체로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김인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과 같은 기관 김영택 연구위원회 함께 쓴 논문 '청년층이 인식하는 한국사회전망이 결혼, 출산자신감에 미치는 영향'을 읽어 볼 만합니다.
이들은 한국노동패널조사를 활용해 15~34세 남녀 1314명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라 보고 있으며 이런 관점이 결혼 및 출산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사회전망을 밝게 보는 청년들이 어둡게 보는 청년들에 비해 출산자신감이 1.255배 높았다. 한국사회안정망변수는 출산자신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썼습니다.
이어 "우리사회가 패자가 되어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부활할 수 있는 포용적인 안정망, 부모세대의 지원이 없이도 개인이 노력하면 보상이 가능한 공정성룰이 작동하여 사람이 살만한 사회를 이루어가는 것이 저출산문제 해결해 놓여진 난제지만 해결책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공자님 말씀처럼 참 맞지만 너무 먼 이야기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가 그렇지 못하다고 믿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이제 결혼과 출산은 '사치품'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1991년 MBC 연속극에서 이대발(최민수 분)이 하는 일은? 정답은 소아과 레지던트. 그의 아내 박지은(하희라 분)은 박사 과정 재학생.
이유리 홍익대 교양교육원 겸임교수 등이 2017년 한국가정과교육학회지에 투고한 논문 '에코세대의 연애 및 결혼, 출산 및 양육의 자신감에 대한 결정요인'은 "사회경제적 지위가 가장 높은 상집단(3.32점)과 중집단(3.29점)의 연애 및 결혼 자신감 수준은 하집단(3.04점)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의 차이를 보였고, 출산 및 양육의 자신감에서는 상집단(3.21점)은 하집단(2.95점)과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실제 출산 결과도 시간이 흐를수록 차이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가입자 소득분위별 분만관련 급여건수 등을 '머니투데이'에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소득 상위 20%에 속하는 5분위 출산 비중은 2008년 15.1%에서 2017년 17.4%로 오른 반면 1분위(소득 하위 20%)는 10.8%에서 10.1%로 줄었습니다.
이건 사실 퍽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이 글 처음에 보신 것처럼 1인당 GDP가 높을수록 합계 출산율이 내려갑니다. 부자 형 놀부와 가난한 동생 흥부 가운데 자식이 많은 쪽 역시 흥부였습니다. 1890년대 유럽에서는 부르주아와 중산층에서 낙태수술이 유행한 반면 노동자 계급은 낙태수술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하릴없이 아이를 낳기도 했습니다(풍속의 역사 4·부르주아의 시대).
그러니까 저소득층이 자녀를 많이 낳는 게 일반적인데 한국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건 또 왜 이럴까요?
이에 대해서는 KICCE에서 지난해 펴낸 '4차 산업혁명 시대 육아정책의 이슈와 과제'를 읽어볼 만합니다. 연구진은 2008년 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네이버 언론기사, 블로그, 카페 등에 올라온 저출산 관련 게시물 22만7100개를 텍스트 마이닝 기법으로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주거'에 대한 언급 비중이 2016년 이후로 크게 늘었고, '주거×교육'을 연계한 표현도 2016년 이후 증가하고 있다. … 따라서 소설 미디어에서는 앞서 머신러닝을 통해 추출된 5개 독립변수 중 '주거' 및 '주거×교육'의 두 가지 변인이 출산 환경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유의미한 변수로 검증되었다. … 이러한 양상을 고려해 볼 때, 주거난 혹은 교육과 연계된 주거 마련의 어려움이 가중될 때 저출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미시적인 요인들이 가장 뚜렷한 변동세를 보인다고 예측할 수 있다.
네, 돌고 돌아 다시 '집'입니다. 그리고 (사)교육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2016년 이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실제 데이터를 보면 2014년부터 변화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2014년 주거×교육 게시물 비중은 11.3%였는데 2017년에는 22.5%로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이 기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서울) 아파트 값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학회지 '국토계획' 2018년 2월호에 실린 논문 '지역의 주택가격이 결혼과 자녀 출산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지역 주택가격이 높을수록 개인의 결혼 확률은 낮아집니다. 또 지역 주택가격이 높은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에는 자녀 숫자도 줄어듭니다.
대신 이렇게 비싼 집을 살 수 있으면 결혼 확률도 올라가고 자녀 숫자도 많아지는 겁니다. 그래서 이 논문에 따르면 부모의 경제 수준이 높을수록 ('할아버지의 경제력'이 보장될수록) 자녀 숫자도 늘어납니다.
그리고 아파트 가격이 비싼 동네는 (사)교육비도 많이 듭니다. 신한은행에서 2017년 내놓은 '2018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강남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에 거주하는 고등학생은 월 평균 86만 원을 사교육비로 썼지만 강북 지역 고등학생은 62.8% 수준인 54만 원을 쓰는 데 그쳤습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가 계속 자율형사립고 폐지 카드를 만지작 거리는 것도 불안요소입니다. 자사고가 정말 모두 문을 닫는다면 이에 대한 풍선효과로 '강남 8학군' 같은 명문 학군이 부활할지 모르고 그러면 그 지역 부동산값이 올라갈 테니까요.
사실 저소득층이라고 처음부터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없던 건 아닙니다. '매일경제'에서 신한은행 빅데이터센터와 공동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소득 1분위 남성은 미혼 때는 출산 의향이 50.7%였다가 결혼을 하고 나면 37%로 줄어듭니다.
같은 소득 구간에 속한 여성 가운데 66.8%가 결혼 후에도 아이를 원한다는 걸 생각하면 저소득층 남성이 정말 간절하게 '무자녀 인생'을 살고 싶어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돈 문제에는 남성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마련이니까요.
물론 사교육을 시작하기 이전에도 돈이 많이 듭니다. KICCE에서 내놓은 '영유아 가구의 소비실태조차 및 양육비용 연구'에 따르면 만 6세 미만 영유아 한 명을 키우는 데는 한 달에 평균 74만7000원이 듭니다. 이렇게 6년 동안 아이를 키우려면 5378만 원이 필요합니다.
올해 2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부문) 결과를 보면 1분위 가구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244만 원 정도입니다. 아이 한 명이 태어나면 갑자기 소득 30%가 사라지는 것. 게다가 아이를 낳고 나면 여성이 직장을 그만두는 일도 많기 때문에 소득 자체가 줄어들 확률도 높습니다.
그렇다면 남녀 모두 일정 수준 소득을 보장 받고, 거주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우며, 직업적 특성상 상대적으로 한국 사회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있으면 아이를 많이 낳지 않을까요?
예, 세종시가 바로 그런 지역이고 세종시는 실제로 출산율이 높습니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 1.57명을 기록한 세종시는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출산율이 높은 지역이었습니다.
심지어 단위를 시도 기준이 아니라 시군구 기준으로 바꿔도 그렇습니다. 하위 행정구역이 따로 없는 세종시는 229개 시군구 가운데 합계 출산율 17위(상위 7.4%)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시(市) 또는 구(區)로 끝나는 행정구역 가운데 세종시보다 합계 출산율이 높은 곳은 부산시 강서구(1.61) 한 곳뿐입니다.
올해만 유독 합계 출산율이 높은 것도 아닙니다. 2015년부터 4년 연속 합계 출산율 1위 시도가 세종시입니다. 그것도 이 4년 모두 세종시는 나머지 16개 시도와 완전히 따로 노는 압도적인 1위입니다.
다만…
위에 있는 상자 수염 그래프를 보시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사실 세종시도 합계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인은 그냥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겁니다. 심지어 미국으로 이민을 가도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미주 한국일보는 2015년 김창환 미국 캔사스대 교수가 발표한 '교육 수준에 따른 미주 한인의 결혼패턴과 경제적 삶의 질'을 인용해 아래와 같이 보도했습니다.
13세 이전의 나이로 이민 온 1.5세와 미국에서 태어난 2세(25~34세)의 평균 출산 자녀수는 0.82명으로 채 1명이 안 돼 흑인(1.56명), 히스패닉(1.52명), 백인(1.37명) 등보다 출산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 사실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고 물어서는 저출산 문제 해법을 찾을 수 없습니다. '도대채 왜 아이를 낳았냐'고 물어야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엄마 아빠 여러분, 도대체 뭘 믿고 아이를 낳으신 겁니까?
정책적 관점에서 보면 아직 희망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출생아 숫자가 계속 떨어지는 와중에도 봉우리를 그린 이들이 있기 때문.
1991~1996년 사이 출생아는 428만3210명으로 1년에 평균 71만3868명이 태어났습니다. 1990년 출생아(64만9735명)보다 10% 정도 많은 숫자입니다.
앞으로 4, 5년 뒤 이들이 본격적인 출산 세대가 되면 한 해에 다시 30만 명 정도는 태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물론 그때까지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 않아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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