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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뒤 노벨상을 타는 연구 결과 게재를 거부한 네이처

2019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알린 일러스트. 왼쪽부터 윌리엄 케일린(미국 하버드대), 피터 랫클리프(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그레그 서멘자(미국 존스홉킨스의대) 교수. 노벨위원회 홈페이지


피터 랫클리프(65) 영국 프랜시스크릭연구소 교수는 그레그 서멘자(63)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교수, 윌리엄 케일린(62) 미국 하버드대 데이나파버 암연구소 교수와 함께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뽑혔습니다.


이들은 세포가 암 등으로 산소가 부족할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밝혀 암과 빈혈, 만성 신부전증 치료 가능성을 제시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저 같은 문과충은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으니 설명을 조금 더 들어 보겠습니다. 다음은 이현숙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는 동아사이언스 [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 꼭지에 남긴 글.


산소는 우리 주변에 흔하지만 저장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바깥에서 몸에 공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몸이 혈액 안에 산소가 적당히 존재하는지 또는 모자란지 늘 감지해야 한다. 1938년 노벨상을 받은 코르네유 장프랑수아 하이먼은 목 양 끝 혈관에 '캐로티드체'라는 것이 존재하고 이것이 혈액내 산소량을 감지해 호흡량을 조절하고 뇌와도 소통한다는 것을 밝혔다. 


산소는 적혈구에 의해 운반돼 혈액을 따라 온 몸에 공급된다. 따라서 적혈구 세포가 계속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것은 신장에서 내보내는 신호인 EPO에 의해 이뤄진다. EPO는 '적혈구를 만드는 신호 단백질'이라는 뜻으로, EPO의 발견은 세포의 산소 감지 시스템을 규명하는 단초가  됐다. EPO는 산소가 적은 저산소 상태(hypoxia)일 때 많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기체인 산소를 감지하는 것은 무엇인지 의문이 생긴다.


서멘자 교수와 랫클리프 교수는 이 비밀을 푼 최초의 과학자이다. 그들은 저산소에 반응하면 EPO의 유전자 발현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특히 서멘자 교수는 EPO 유전자에서 전령RNA(mRNA) 생산 위치를 알려주는 부위인 프로모터에서 저산소 반응 인자(Hypoxia-Responsible Element; HRE)를 찾아냈다. 이후 그는 HRE에 결합하는 HIF(Hypoxia-inducible factor) 단백질을 규명했다. 저산소 상태에서 HIF에 의해 발현이 유도되는 유전자군은 300여개에 이르며 EPO는 그 중 하나다.


여기까지 밝혀내자 과학자들은 HIF가 어떻게 산소량을 감지하는지에 주목하게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할 단서는 전혀 다른 연구를 하던 케일린 교수가 제시했다. 암 생물학자인 케일린 교수는 본히펠린다우라는 희귀 유전 질환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이 질병의 원인 유전자로 VHL을 밝혀냈다. VHL의 돌연변이가 신장암 등의 질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케일린 교수는 이 과정에서 VHL이 HIF에 '유비퀴틴 체인'을 달아 단백질 분해를 유도하는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유비퀴틴은 76개의 아미노산 사슬로 이뤄진 단백질인데, 다른 단백질에 붙어 분해를 촉진한다. 그 결과 정상 세포에서 VHL을 만난 HIF는 수 분안에 바로 분해되고 만다. 반면 저산소 상태에서 HIF는 안정화되고 핵 안으로 들어가 HRE에 결합해 다양한 유전자의 발현을 유도해 저산소 상황을 극복한다. 


이후 케일린 교수는 랫클리프와 함께 HIF가 어떻게 산소량에 반응하는지 규명하는 데 몰두했다. 그들은 적정량의 산소가 있을 경우 HIF 단백질이 수산화돼(분자에 OH기가 붙는다는 뜻) 산소 원자를 품는다는 사실을 밝혔다. VHL은 수산화된 HIF를 인식해 분해시킨다. 그러나 저산소일때 HIF는 수산화되지 않고, VHL이 인식하지도 분해하지 않아 핵 안으로 들어가 전사 인자로 작용하게 된다. 이때 발현되는 유전자 가운데는 암덩어리 속까지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는 새 혈관을 만들도록 신호를 보내는 유전자인 VGEF도 포함돼 있다. VHL은 산소를 감지하는 일종의 '분자 스위치'인 셈이다.


이런 산소 감지 메커니즘은 빈혈과 암, 대사성 질환, 심장 마비, 뇌졸중 등 관련되지 않는 질병을 찾기 힘들 정도다. 노벨위원회는 특히 HIF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빈혈과 암 치료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빈혈의 경우 HIF를 올리는 일련의 실험들이 긍정적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반대로 HIF를 억제하는 저해제는 암에서 혈관 생성을 억제해 항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신장암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이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HIF는 너무 많아도, 적어도 문제가 되기 때문에 산소 센서를 조절하는 일은 매우 민감한 일이고, 이를 응용하려는 연구도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저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위키피디아에서 설명하는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서도 무슨 말인지 몰랐으니까요.


랫클리프 교수가 노벨상을 타면서 그가 1992년 8월 5일 네이처에서 받았던 논문 게재 거절 통지서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네이처는 당시 부편집장(associate editor)을 맡고 있던 로리 하울렛 박사 명의로 통지서를 보내면서 "우리는 지면 제약으로 싣기가 곤란할 듯하다. 조금 더 전문적인 저널에 싣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나중에 노벨상을 타게 되는 연구를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있는 반면 거꾸로 지금 보면 엉뚱한 연구 결과가 노벨상을 타기도 합니다.


노벨상은 당대 최고 수준의 '과학 발견'에 주는 상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아연실색하게 하는 연구 결과도 많다. '기생충이 암을 일으킨다'(1926년) '매독을 치료하는 데는 말라리아균이 특효다'(1927년) '정신병을 치료하려면 외과적 뇌수술이 필요하다'(1949년) 등의 주장은 모두 노벨 생리의학상을 탔다.


과학이라는 건 이렇게 항상 '틀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매력적입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그건 이미 연구라고 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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