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 코리아
옛날 신문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정답은 시노다 지사쿠(篠田治策·1872~1946) 차관과 이항구(1881~1945) 예식과장입니다.
1924년 4월 13일자 동아일보는 아래처럼 보도했습니다.
두 사람이 11일 아침부터 자동차를 몰아 용산 효창원에 이르러 날이 저물도록 '꼴프' 놀이에 정신이 없었다 하니 과연 이것이 그들의 취할 바 가장 온당한 도리이었겠는가.
두 사람은 조선총독부에서 조선 왕실 관련 사무를 맡아 보던 기관 이왕직(李王職) 소속이었습니다.
이왕직에 문제가 생긴 건 1924년 4월 10일이었습니다.
도둑이 종묘에 들어 어보(御寶·의례용 왕실 도장) 다섯 개를 훔쳐 간 것.
당시 왕실 유물 관리 실무 책임자가 바로 이 과장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어보를 찾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게 일반적일 텐데 이 과장은 '꼴푸 노리에 취(醉)한' 상태였습니다.
1924년 4월 13일자 동아일보 지면. 동아일보 PDF
이왕직이라는 부처가 따로 있었지만 당시 이왕(李王)이던 순종(1874~1926)에게 실질적인 권한이 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유물 관리가 이렇게 허술한 게 이상한 일이라고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동아일보에서 도난 사실을 [단독] 보도하자 (친일파로 유명한) 민영기(1858~1927) 이왕직 장관은 “비밀에 부친 일이 신문에 발표돼 참으로 세상에 대해서도 면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도난을 당한 것보다 보도가 더 큰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했던 것.
이 과장도 "황송한 말이야 어찌 입을 열어 다 하겟소만은 이왕 당한 일이니 다만 처분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동아일보 표현대로 500년 만에 처음으로 종묘에서 도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일개 과장'이 차관과 함께 하루 종일 골프를 치고도 이렇게 당당할 수 있던 걸까요?
이 과장 아버지 이름을 들으면 의문이 풀릴지 모르겠습니다.
이 과장 아버지는 리노이에 칸요(李家完用·1858~1926) 그러니까 이완용이었습니다.
이완용 가족 사진. 앞 줄 가운데가 이완용 그 뒤가 이항구. 동아일보DB
2020년 8월 29일 오늘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지 110년 되는 날입니다.
기사 읽기: https://bit.ly/2R36H5s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