聰明不如鈍筆
총명불여둔필
assignment Scribble/.OLD

헤어짐과의 조우

When I tie my shoes,
When I peel an orange,
When I drive my car,
I still remain yours.

What I try to mean is not your love, but your routine.

두번째 같은 층에서 멈추는 엘리베이터에 타는 사내애가,
처음의 사내애와 형제라는 사실을 손쉽게 알아챌 수 있는 일는
제 침조차 맘대로 삼키지 못해 침 뱉을 곳을 늘 두리번거리는 어리석은 조카보다는
잘라내 버린 위 때문에 1년 넘게 음식에 대한 부담을 지고 사는 가엾은 고모와
더욱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일상이 변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루에 몇번이나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치는 사소한 일들 하나 하나,
그들 모두가 일상이기에 우리가 일상에 대해 꺠닫고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일상이 변한다,
침을 삼킬 때마다 부어버린 편도선의 긴장에
평소엔 깨닫지 못했던 침 삼키는 회수에도 관심이 가져지고,
무심코 넘기는 물 한 모금, 밥 한 숟갈이
얼마나 많은 신체부위를 사용해야만 가능한 일인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이제 곁에서 일상이 되어 주었던 한 사람이 떠나려 한다.
정말 내가 두려워 하는 건,
사랑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보다는 일상의 변화에서 오는 어색함이다.
당연히 그곳에 있어줘야만 할 것 같은 사람,
당연히 그것을 함께 해야만 할 것 같은 사람,
당연히 그때에 함께 있어줄 것만 같은 사람,
혼자서 일어 나고,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영화 보고, 혼자서 친구 만나고,
혼자서 술 마시고, 혼자서 집에 오고, 혼자서 통신 하고, 혼자서 잠이 들고,
다시는 새벽 같이 학원에 가야 할 그의 잠을 깨워줄 일도 없고,
자기한테 소홀해졌다고 투정부릴 그와 싸울 일도 없고,
하지만 지금 날 두드리는 건 이 모두가 그저 일상이었을 뿐이라는 작은 위안이다.

결국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엔,
다른 이의 일상이 내 일상에 흘러들어 그의 자린 조용히 수몰되어 갈 것이다.
그게 내가 지금껏 겪은 몇 번의 이별을 견디어온 별나지도 못한 방법이다.
아니, 너무도 평범한 이별의 방법일 뿐이다.

일상은 본래가 조금은 지겨운 것이다.
이 망할 놈의 세상에서는 지루하게 사는 법만 가르칠 뿐,
평범하게 사는 법은 도무지 누구도 가르쳐 주지를 않는다.
그래서 무엇보다 평범하게 사는 법은 어렵다.

도무지 평범할 수 없는 우리의 일상이었기에
잊는 법을 가르치려 드는 많은 이들을 뿌리쳐야만 하겠지만,
애당초 잊지 못할 일은 잊지 못한다는 확신에 젖어 살아가는 나이기에
그의 친구들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건낼 만큼의 작은 여유는 남기고 싶다.

어쩌면 언젠가부터 사랑이 아닌 일상이 되어 버린 만남,
그건 그 무엇도 아닌 하나의 초대,

Did you know how much I love you?

그에게로부터 받은 일상으로의 초대는 결국 이렇게 끝이 났다.


─── kini註 ────────
1999년 10월 17일, 조악한 감성으로부터…

재미있는 건 이 글에 당시 기준으로 전후의 여자친구가 모두 코멘트를 남겼다는 것

먼저 한 명은 ;

 ..  ★  . ..   ☆ .     ..    ★..  ☆ . . ..   ★ .  ..     .  ..    ☆   . .
 .   .        .  글 참 좋다...제목도 맘에 들고..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일상은 바뀌어도 일상이고..여유는 늘 탐나는 것..
    .    .  .           .  . .   .    ..
 .   .☆   .    ..★  .  .   .

또 한 명은 ;

나 그래도 일상이 좋았던거 같다....
일상이 있어야...특별함도 있지....

어느 쪽이 前이고 後인지 어쩌면 분명히 드러나는 코멘트

그리고 일상으로 초대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웃기지도 않는 비겁함으로 나를 달래야했던 못난 순간.

꼭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은 아니지만 키플링의 말이 생각난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지나가리라.

생각해 보면, 저 말 역시 누군가 쪽지에 적어 내게 건넸던 말.

함께 일상을 보내는다는 게
어떻게 하는 건지 완전히 까먹은 모양.

아쉽고
슬프다.

Period.

댓글,

Scribble/.OLD | 카테고리 다른 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