聰明不如鈍筆
총명불여둔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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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 콜라 애인

바보, 지랄 맞은 염색체의 요구에 단백질 몇 CC 로밖에 대꾸하지 못하고, 얽혀 헉헉대지도 않은 채 어설프게 자판만 토닥토닥, 마스터베이션은 콜라맛이 아니다.

<코카 콜라 애인>이란 제목을 듣고 톡 쏘는 애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콜라를 먹는 방식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 참 재미 없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자꾸 <코카 콜라 애인>을 들먹이게 되는 걸 보면, 그 빌어먹을 평가가 맞는 말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걷이> 따위의 글의 진도는 오늘도 막막하기만 하고, <자폐증>과 <루시퍼의 사랑> 사이의 갈등은 그다지 펑크적이지도 사이버틱하지도 않다. 그리 심한 말을 퍼부어 준 게 나답다고 생각들 하는 걸 보면, 싸구려 메스보다는 날카롭게 곤두 선 내 신경이 그네들의 뉴런을 골고루 파해쳐주긴 한 모양이다.

그래도 난 과감히 삭제 버튼을 눌러 그네들을 소각시켜 버릴 것이고, 내 두뇌 한구석을 서서히 수몰시키고 있는 알 수 없는 화학성분들의 조성을 모조리 외워버릴 것이다. 인간은 화학적 진화를 거듭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화학적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에 화학의 변명이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생명이 섹스를 만든 것이 아니라 섹스가 생명을 창조했다.

쓰지 않으면 아무런 상관도 없는 말들이겠으나, 그래도 할말을 입에 담아두면 어떤 생리학적 작용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레비스트로스가 단박에 지적해 낸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도 등장하는 바이므로 굳이 이야기를 꺼내자면,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던 인간이 갑자기 끌리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는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느낌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고, 혹 발정난 늑대의 어떤 알수 없는 심리작용에 의한 삽질일 수도 있다.

게다가 남녀사이의 우정이란 본래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사모하고 있으나,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깨닫고 있지 못하는 상태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므로, 결국 단백질의 꿈틀거림 정도에 따라 그러한 관계맺음의 방식 따위는 얼마든 변동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나는 설거지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며, '늘 푸른'의 그 구린 뮤직 비디오 따위도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지 않는가. 그래도 한번쯤은 당신을 사랑하고 싶다.

바보 같이 숨이 턱 막히고, 눈 아래 그늘의 각도에 미묘한 변화가 생기면서 유치하게 있는 그대로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어리석음만 범하지 않는다면, 현실은 그 어느 픽션도 제공할 수 없는 놀라운 상상의 축적물들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가. 때로 현실이 다른 그 어느 것보다 실감나지 않는 경우가 있질 않은가. 그래서 나는 다만 거짓말장이가 되기를 자처한다.

맞다, 나는 지금 너무도 포르말린에 쩌들어 간다. 리트머스보다 확실한 그 어느 시약으로 나를 구별해 낼 수 있다면, 가시나무의 가사 따위를 빌리지 않아도 내 속엔 '나\라는 불순물이 너무 많다. 오체투지를 하기에 내 몸뚱아리엔 너무 많은 지방이 붙었다. 그들에 의해 투영된 나의 눈부처는 여전히 보잘 것 없다. 그냥 이대로 살다 죽자. 80년대생들이여, 그대들도 그만 죽으라.


─── kini註 ────────

2000년 12월 21일 오전 6시 21분
"그래도 한번쯤은 당신을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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