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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담] 내가 낀 색안경 혹은 인간의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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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이 대상을 만든다." - 페르디낭 드 소쉬르

저는 학창시절 언어학이라는 개떡 같은 학문을 전공했습니다. 그 때 들은 소리 중 제일 좋아하는 말입니다. 또 다니는 회사를 말하면 남들이 제 정치적 성향을 멋대로 짐작 하는 일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때마다 가장 자주 또 깊숙이 느끼는 말이기도 합니다.

왜 유명한 심리 실험 있죠? 실험자는 파란색 종이를 받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 세 명이 '이건 빨간색이야'하고 말합니다. 이 실험자도 덩달아 '빨간색'이라고 말하죠.

또 다니엘 길버트 교수(하버드대) 실험 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읽은 건 일단 무조건 믿습니다. 읽으면서 '이건 말이 안 돼' 하고 의심을 하지 못합니다. 일단 읽으면 다 '참'이라고 믿습니다. 그 뒤 분명 '거짓'이라는 확증이 없으면 그 믿음은 깨지지 않습니다.

(부산 한 중학교에서 일어났다는 살인 사건이 그 예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은 심심하면 한 번 씩 '참'인 것처럼 올라옵니다. 그게 거짓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단 '거짓'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없는 것처럼 '참'이라는 분명한 증거도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진짜 있던 일'로 믿습니다.)

그 유명한 침묵의 나선 이론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유력한 견해와 다르면 말을 아끼죠.

카스 선스타인 교수(하버드 로스쿨)는 자기 책 '리퍼블릭닷컴 2.0'에서 "인터넷은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의견만 보도록 만든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견해와 같은 글만 찾아 읽습니다. 또 그 글을 남들 읽으라고 링크를 겁니다.

우리는 많은 일에 미리 '해답'을 정해두고 삽니다.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닙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인간 본성이 그렇습니다.

인간은 또 그 해답을 '참'으로 증명하려고 근거를 긁어모으죠. 아니, 근거는 이미 주변에 널렸습니다. 다들 '나'처럼 생각하고 있거든요.

내가 잘 모르면 주변에서 '야 그건 말이야 A가 B니까 C가 되는 거야'하고 일러줍니다. 간혹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럼 나와 생각이 같은 여럿이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아니, D면 E가 되고 그래서 F가 된 줄 몰라요?" 우리는 생각하죠. '거봐, 역시 내 생각이 맞아.'

그냥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나처럼 생각하는 유명 인사 얘기를 언제든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더러 포지셔닝에 아주 능해 자기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도 만납니다. 그게 들켜 창피를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내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잘못도 저지릅니다. 어떤 이들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눈감아 줍니다. 빌어먹을. 그 쪽에선 내가 빌어먹을.

도대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중 어떤 것이 진실 또는 사실이고, 또 어떤 것이 거짓일까요? 혹시 오늘 내가 '참'이라고 믿었던 게 내일이면 '거짓'의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는 건 아닐까요?

言辯而不及(언변이불급)
말을 아무리 잘해도 도에 미치지 못 하네
孰知不言之辯(수지불언지변)
누가 아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 장자 '재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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