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주 가는 사이트에 말복이 지나니 더위가 한풀 꺾였다며 '음력'이 대단하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러자 24절기는 '양력' 기준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등장. 맞다, 절기는 (결과적으로) 양력 기준이다. 그러나 초복 중복 말복 등 삼복은 24절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 음력은 달의 삭망(朔望)주기 기준. 달을 기준으로 하면 날을 세는 데는 별 문제가 없지만 기후 변화는 예측할 수 없다. 기후는 태양 움직임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 농경사회였던 중국 주나라 사람들은 천문학 지식을 동원해 태양 공전 주기를 24등분한 다음 화북 지방 기후를 나타내는 이름을 붙였다. 이 때문에 절기는 매해 양력 날짜가 거의 똑같다. 양력부터 태양 움직임 기준이기 때문이다.
• 전문가들은 삼국시대 이전에 한반도에 24절기가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단 민간에도 널리 퍼진 건 고려 후기라고 한다. 그 전까지는 문헌자료에서 찾기 힘든 24절기 관련 내용이 당시 문집류에 흔히 등장한다는 것이 그 근거다. 절기는 중국 화북 지방 기준이기 때문에 우리 나라 기후하고 잘 맞지 않을 때도 많다. "대한이가 소한이네 집에 갔다가 얼어죽는다"는 건 그런 까닭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절기는 청나라 시헌력(時憲曆) 기준이다.
•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갑오(甲午)년 임신(壬申)월 무오(戊午)일이다. 이렇게 12지로 연월일을 표시할 때 10천지를 가지고 요일(?)을 정하는 데 무오일은 무일이다. 그러면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일이 다 있을 터. 하지가 지난 뒤 세 번째 경일(庚日)이 초복이고, 네 번째는 중복이다. 입추 후 첫 번째가 말복. 시헌력은 동지 기준이라 하지와 입추 사이가 길 때가 있는데 이러면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이 된다. 올해가 그렇다. 말복이자 입추였던 7일은 경(술)일이었다.
• 처음부터 서구에서 쓰던 양력을 썼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왜 이리 복잡하냐고? 앨프리드 W. 크로시브는 '수량화 혁명'에 "사실 서유럽인들이 달력을 고치는 데 꾸물거렸다는 것보다 어쨌든 해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고 썼다. 양력(그레고리력)에서는 1752년 9월 2일 다음 날이 14일이다. 아이는 엄마 아빠가 원래부터 가족이었는 줄 알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서로 전혀 모르는 사이였대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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