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ignment Scribble

'같아요'는 써도 괜찮은 것 같아요.

무한도전 '짝꿍' 특집 한 장면. MBC 제공

1. 심심하면 한 번씩 '같아요'를 쓰지 말자는 캠페인이 벌어지곤 합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이 표현을 싫어하게 됐을까요?

 

 

2. "수고랄 것도 없지요. 저는 제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조금도 무리를 느끼지 않읍니다. 저한테 꼭 알맞은 것 같아요."

 

동아일보 1949년 9월 26일자에 나간 연재 소설 '해방'에서 가져온 문장입니다. 이 소설 작가는 학창 시절에 이름을 들어보셨을 김동리(1913~1995) 선생입니다.

 

김 선생은 10월 27일자에도 "이젠 전 어디 가서라두 혼자 살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문장을 보냈습니다.

 

조선일보 1953년 3월 29일자 '여성운동의 길을 찾아서'에도 "오직 눈물로만 형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같아요'는 생각보다 역사가 꽤 긴 것 같아요.

 

조선일보는 1983년 11월 26일자에도 "PD가 무언지 잘 모르던 사람들이 '추적 60분' 이후 PD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된 것 같아요"라는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그러고는 사흘 뒤 '청소년 말버릇 "…같아요" 공해'라는 제목으로 사회면 톱기사를 내보냅니다. 왜였을까요?

 

'문교부'(현 교육부)에서 지침이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당시 문교부 장관은 우강 권이혁(1923~2020) 박사였습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권 박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 부름을 받아 (서울대) 총장직을 그만"두고 문교부 장관이 됐습니다.

 

그런 점에서 '같아요'가 청와대에 계신 분 심기를 불편하게 해 쓰지 말라고 한 건지도 모르는 것 같아요.

 

 

3. 언어학 하위 분야 중에 '화용론(話用論)'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람들이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 말하는지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같아요'를 다룬 화용론 연구 결과도 적지 않습니다. 아래는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 검색 결과 맨 처음에 나온 논문에서 가져온 것.

 

•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는 말을 할 때 부담을 줄이기 위해 쓴다.

① 상대방 의견에 반대할 때

가 : 사과가 한 개에 천 원이에요. 참 싸네요.

나 : 아닌 것 같은데요. 요즘은 더 싼 사과들도 많아요.

 

② 상대방의 제안이나 부탁에 거절할 때

가 : 오늘 같이 영화 보러 갈래요?

나 : 못 갈 것 같아요. 내일이 시험이거든요.

 

③ 상대방에게 요청이나 부탁, 제안을 할 때

√ ‘-으면 좋다, -ㄴ 것이 좋다, -아/어야 하다, -아/어야 되다’ 등의 표현들과 같이 쓴다.

가 : 요즘 잠이 잘 안 와요.

나 : 자기 전에 우유를 먹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 자신의 생각을 겸손하게 말할 때 쓴다.

가 : 이번 소풍 때 공원을 가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박물관에 가는 게 좋을까요?

나 : 저는 공원을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실제로도 이런 이유로 '같아요'를 쓰는 것 같지 않은가요?

 

 

4. '같아요'보다 자기 생각을 더 명확하고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건 분명 사실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자기 생각을 명확하고 간결하고 표현하고 싶을 때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 저는 '같아요'를 써도 괜찮은 것 같아요.

 

'같아요'를 쓰지 말라는 게 누군가에게는 "야, 너 말투가 마음에 안 든다"처럼 들리는 것 같으니까요.

 

 

 

5. 영어에서도 'I feel like'를 써도 되는지 논쟁이 있습니다.

 

몰리 로텐(41)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종교학)는 2016년 뉴욕타임스에 Stop saying 'I Fell Like'라는 칼럼을 보냈습니다.

 

반대로 존 맥워터(57) 컬럼비아대 교수(언어학)는 5월 10일 "'I feel like'를 써도 괜찮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저도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했으니 다시 한번 '같아요'는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댓글,

Scribble | 카테고리 다른 글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