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 포스트가 대부분 그렇듯 대단한 인사이트를 담은 글은 아닙니다. 이 포스트와 가장 가까운 글쓰기 형태는 일기입니다. 그냥 '아, 쟤는 요즘 이런 고민을 하면서 살고 있구나' 정도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2).
글을 시작하면서 (2)를 붙인 건 올해 1월 '2019년 종이신문사 디지털뉴스팀원으로 산다는 것'을 쓰면서 똑같은 문단으로 시작했기 때문. 똑같은 문단으로 시작한 건 그때 짐작했던 일 가운데 현실로 나타난 게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 언론사의 가장 좋은 이웃(neighbor) 네이버는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 언론사 관계자를 불러모아 '2019 미디어 커넥트 데이'를 진행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전재료와 상생기금을 CP(kini註-콘텐츠 제휴 언론사) 및 모바일 채널 제휴 언론사에 나누는 현행 수익모델을 폐지하고 네이버 인링크에서 나오는 광고수입을 전면 지급하는 모델로 전환하는 게 핵심"이라고 이 행사를 요약했습니다.
가두리 양식장 풍경. 동아일보DB
여기서 제일 주목해야 하는 표현은 '인링크'라고 생각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인링크는 네이버라는 '가두리 양식장'을 상징하는 낱말. 네이버는 인링크라는 그물을 통해 언론사에서 생산한 네이버 맞춤형 콘텐츠가 구글 같은 다른 검색 엔진에 걸리지 않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언론사가 주목한 '전재료 → 광고수입' 모델 전환은 사실 '스마트 미디어 스튜디오(Smart Media Studio)'를 연착륙 시키려는 수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네이버 발표 자료를 통해 네이버가 어떤 생각으로 이번 행사를 마련했는지(정확하게는 그렇다고 제가 짐작했는지) 한번 되짚어 볼까요?
아래 그림이 사실상 발표자료 첫 페이지였습니다(실제로는 3쪽).
기차역 플랫폼에서 열차와 손님이 만나는 것처럼 네이버는 스스로 '우리는 플랫폼일 뿐'이라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좋은 시장을 만들었으니 얼른 와서 뉴스 상품을 사고 파세요. 자릿세는 트래픽으로 받습니다' 정도 될까요?
네이버는 세 페이지 뒤에(6쪽) 이 사실을 또 한 번 강조합니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네이버는) 궁극적으로 언론사와 이용자가 잘 만나며 함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기술적인 도구와 데이터를 제공하는 파트너이자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에 더욱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손님이 북적이는 시장을 유지 보수하는 건 물론이고 아주 쓰기 좋은 매장 관리 시스템도 만들어 줄 테니 비싼 값을 쳐줄 손님을 만나려면 '너네'(언론사)도 잘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 겁니다. 네이버는 다시 여섯 페이지 뒤에(12쪽) 전체 구독자 가운데 67%는 기사 본문을 보고 선택했다고 강조합니다.
올해 4월부터 최소 6개월 동안 언론사끼리 신나게 구독자 확보 경쟁을 벌이도록 만들어 놓고 '결국 좋은 기사를 쓸수록 구독자가 늘어나더라'라고 공자님 말씀을 읊는 겁니다.
언론사에서는 '누가 몰라서 그랬나? 그런데 어차피 네이버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한 기사가 좋은 기사 아닌가?'라고 물을 수 있는 대목.
네이버는 한 발 더 물러납니다. 네이버는 발표자료 16쪽에 '에어스 도입 이후 백일장 장원이 이렇게 늘었다'며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선포할 수 있는 권한" 1을 무기로 승부를 "운(運)에 맡기는 '네거티브 경쟁' 그만하고 '포지티브' 경쟁을 벌이라"고 주문합니다. 2
언론 생태계에서 네거티브(-) 경쟁은 '물을 먹지 않으려고' 일단 다 쓰고 보는 걸 뜻하고, 포지티브(+) 경쟁은 '우리만 쓰는 기사를 쓰자'고 발상을 전환하는 걸 의미합니다.
같은 주제 가운데 '네이버 메인 픽' 타이틀을 차지할 수 있는 기사는 보통 하나뿐입니다. 이 타이틀을 두고 모든 언론사가 '인터넷 뉴스팀' 같은 별도 조직까지 만들어 뛰어듭니다. 누구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똑같은 기사 위에 똑같은 기사가 쌓이고 또 쌓입니다. 당장 몇 시간만 지나도 아무도 읽지 않을 기사라는 걸 쓰는 사람도 알지만 혹시 타이틀을 차지할지 모른다는 희망에 기대어 일단 열심히 씁니다.
그러니까 네이버는 '더 빨리(faster) 쓰기' 경쟁하지 말고 '유일한(only) 기사를 쓰라'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포지티브 기법으로 생산한 기사를 네이버에 가둬두려면 '미끼'가 필요합니다. 네이버는 발표자료 33쪽을 통해 '온라인 뉴스 유통에 필요한 미디어 도구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이 '스마트한 미디어 도구'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스마트 미디어 스튜디오'는 뉴스 통합관리시스템으로 언론사들이 정해진 틀 안에서 기사를 배열하는 현행 구독 모델과 달리 섹션 및 주제별 편집 확대, 알림·제보 기능 등 소통 강화, 음성 영상 웹툰 등 다양한 형식의 기사를 지원한다. 언론에 제공하는 데이터 종류도 늘린다. 언론은 유료화 기능도 도입할 수 있다.
사실 이건 언론사로서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제안입니다. 어떤 기사를 어떻게 편집해서 어떻게 발행하고 누구에게 배달할 것인지가 사실 언론사가 가지고 있는 제일 큰 힘이거든요.
문제는 소위 '디지털 시대'에 이런 콘텐츠매니지먼트시스템(CMS)이 꼭 필요하지만 한국 언론사 대부분 스스로 만들 능력은 없다는 것.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니라 네이버 제안입니다. 그러니 다들 덮석 물 겁니다.
그래도 혹시 오해하는 언론사가 있을까 봐 네이버는 네 쪽 뒤에 다시 한번 목표를 밝힙니다.
'너희가 잘만 하면 구독자를 얻을 수 있는 데 이렇게 편리한 도구를 안 쓸 테야?'하고 말입니다. 아니요, 물론 써야지요. 두 번 써야지요.
이렇게 네이버에서 새로운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언론사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게 21세기 한국 미디어 시장 현실. 당연히 '이 도구를 가지고 어떤 장난을 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이들도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네이버는 이번에도 외부 평가자가 보기에 제법 그럴 듯한 모범답안 하나를 내놓습니다. 바로 '열독률'입니다(48쪽).
'카카오'에서 열독률에 주목한 게 이미 2년 전이니까 사실 이 접근법 자체를 새롭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네, 그렇다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닙니다. '충성도(로열티)'를 측정할 수 있는 '퀵 앤드 더티(Quick And Dirty)' 방법으로는 열독률만큼 좋은 지표가 찾기 힘드니까요.
적어도 그저 PV 또는 순방문자(UV)를 보는 것보다는 열독률이 훨씬 낫습니다. 특히 '돈이 되는' 소비자를 가려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언론사에서 곧바로 PV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는 않을 겁니다. PV병(病)≒속보병은 완전 고질병이니까요.
그래서 네이버에서는 다시 한번 '수익'이라는 미끼를 강조합니다(53쪽).
네이버에서 언론 기사가 필요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모객(募客) 효과' 때문. 일단 손님이 가두리 양식장 안으로 들어오고 난 다음에 지갑을 열게 하는 데는 도가 튼 네이버입니다.
그래도 기왕이면 지갑이 두둑한 손님이 오래 머물면서 이것 저것 둘러보면 좋겠죠?
어떤 의미에서는 네이버에서 각 언론사에 '머리를 맞대고 그런 소비자를 같이 찾아보자'고 제안한 것이라고 이번 시도를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
광고 수익 배분 공식 개발에 참여한 김성철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는 "독자와 신뢰를 쌓고 이들이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경제를 만드는 게 팬 이코노미이자 구독경제"라면서 "네이버도 구독경제로 가야 하고, 언론사도 팬 기반 비즈니스로 옮겨가는 게 필요한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언론사, 정확하게 종이신문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제가 특정 언론사 디지털 전략 총책임자라면 스마트 미디어 스튜디오에 다걸기(올인)할 겁니다.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네이버에 있으니까요.
그리고 '타깃 독자'를 엄선해 그들 마음을 제일 잘 아는 '빠꼼이' 기자를 골라서 '마이크로 뉴스'를 쓰라고 주문할 겁니다. 이 그룹이 어떤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있으며 그걸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지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현실에서는 이런 접근이 쉽지 않습니다. 당장 언론사 홈페이지=언론사닷컴 직원들 밥줄이 걸린 문제니까요. 실제로 스튜디오를 보지 못해서 어떤 식으로 설계했을지 알 수 없지만 만약 기자 개인이 접근할 수 있는 형태에서 저 스튜디오에 올인한다면 언론사닷컴에서 편집을 담당하는 직원은 거의 대부분 일자리를 잃게 될 겁니다.
게다가 '윗분'들은 저 스튜디오를 싫어할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2019년 종이신문사 디지털뉴스팀원으로 산다는 것' 포스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언론사를 움직이는 힘은 결국 편집권과 인사권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이 스튜디오는 두 권력을 모두 부정하는 존재입니다.
그런 이유로 현실적으로는 각 부서 데스크에게 광고 영업 부담만 늘어날 확률이 제일 높습니다. 적어도 인사권은 꽉 쥐고 있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광고주는 아마 매체별로 이미 할당한 광고비 총액을 지면과 네이버에 어떤 비율로 나눠야 할지 고민해야 할지 모릅니다.
아, 물론 '속보 챙겨라'하는 말이 편집국 안에서 더욱 유행할 겁니다. 일선 기자들이 이 말을 잘 들을수록 적어도 윗분을 영(令)은 설 테니까요.
그러는 동안 윤전기는 머지 않은 운명의 마지막 날을 향해 돌고 또 돌아가고, 배달지를 찾지 못한 각 신문사 지국에는 먼지가 내려 앉은 어제 신문이 쌓이고 또 쌓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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