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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이라는 미스테리, 같은 핏줄이라는 히스테리


여러분은 조상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계십니까?


이 글을 읽고 계신 거의 분은 거의 대부분 '나는 ○○(본관) ○씨 ○○○파 ○○대손(또는 세손)'이라고 자신을 정의하는 법을 알고 계실 겁니다.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저는 창원 황씨 병사공파 18세손입니다.


아마 학창 시절 본관 시조가 누구인지 알아오는 숙제를 해보신 분이 적지 않으실 터. 그런데 분파를 하신 조상은 누군지 알고 계신가요? 그러니까 제 경우 병사공(兵使公)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사실 저도 평생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난 김에 지금 찾아 보니 이런 분이었다고 나옵니다.


1521년(중종 16) 문과에 병과로 급제, 1522년 승문원부정자가 된 뒤 1525년 성균전적, 1526년 형조좌랑을 거쳐 형조정랑·황해도사·교리·지평 등을 지내고 서장관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1532년 금산군수, 1534년 한성부서윤·종부시첨정을 거쳐 사간원사간이 되었다.


이때 생질이 권신들의 미움을 받아 함께 탄핵, 파직되자 영천으로 낙향하여 정사(精舍)를 짓고 ‘구암’이라 자호하여 독서와 후진 양성에 전심하였다.


1537년 복작되었으나 벼슬에 뜻을 버리고 고향에서 독서로 일생을 보내며, 『역학계몽(易學啓蒙)』·『황극경세(皇極經世)』·『태극도(太極圖)』 등을 깊이 연구하였다. 이황(李滉)과도 교유하였으며, 도상학(圖象學)과 역학에 밝았다. 영주의 사계서원(泗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구암일고(龜巖逸稿)』가 있다.


이 내용을 읽고 '경북 영주시에 가서도 나는 왜 소수서원만 찾았던가'하고 잠시 아쉬워했지만 사계서원은 1868년 훼철(毁撤·헐어서 치워버림)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병사공 할아버지는 정말 제가 그분을 제향한 사원이 훼철된 건 안타까워 해도 좋을 만큼 유일한 존재일까요?



양반 가문 후손인데 조상 중에 노비가 있다고?

병사공 할아버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던 건 족보 덕분. 그런데 많이들 아시는 것처럼 일단 이 족보라는 게 별로 믿을 만한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권내현 고려대 교수(역사교육학)는 2014년 펴낸 책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을 통해 노비 가계가 200년에 걸쳐 양반(유학·幼學) 신분을 얻어 가는 과정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무슨 노비냐고요? 네, 여러분 댁이 그런 것처럼 저희 집안도 노비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저는 심지어 병사공 할아버지 종손입니다. 확실한 양반 가문 출신인 셈입니다.


아니, 정말 그럴까요?


저는 저 책을 읽고 나서 "누구신지 모르지만 같은 선택과 노력을 하셨을 내 조상님께도 감사를"이라고 썼습니다.



직계 조상이 양반이었다는 확실한 증거(=being 종손)가 있는데도 제가 저렇게 쓴 이유는 뭘까요? 제 18대 조상이 저 할아버지 한 분이 아니니까요. 저는 저 포스트 댓글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혹시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까 말씀드리면 아래 그림에서 보듯 고조부대만 해도 내게 유전자를 물려주신 분은 총 16분이나 계신다. 이 책은 18세기부터 시작하니 300년 전. 10세대 위라면 1024명이 내게 피를 물려주셨다. 정말 이 1024분 가운데 노비였던 분이 단 한 분도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같은 이치로 18대 조상이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총 26만2144(=$2^{18}$) 분 계셨습니다. 제 18대 조상만 따져도 경북 경산시 인구(2017년 기준 25만9485 명)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만 조상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아닌 조상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여러분은 외할아버지의 외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었는지 알고 계시나요? 


이런 조상은 호칭도 따로 없습니다. 아버지의 할머니는 '증조모'이지만 아버지의 외할머니는 (요즘에는 '왕할머니'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냥 아버지의 외할머니입니다. 이 할머니도 저 할머니도 똑같이 유전자 $\frac{1}{8}$을 물려주셨는데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정부에서 동학 농민 운동 참여자 후손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만약 이 그림에서 맨 위에 있는 보라색 아이콘이 동학 농민 운동 참가자였다고 칩시다. 그러면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아들 그러니까 고손자인 자손B는 자신에게 이런 조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확률이 적지 않습니다. 딸의 딸의 딸의 딸인 자손 A도 그럴까요? 외할머니의 외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정말 아세요? 


이렇게 우리는 조상 대부분이 누구였는지 모릅니다. 18대까지 거슬러 올라다면 우리는 총 52만4286 분으로부터 우리는 유전자를 물려받았습니다. 정말 이 중에 노비였던 분이 단 한 분도 계시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으세요?



여러분 댁과 저희 집은 (먼) 친척 사이다

사실 이렇게 한 세대가 올라갈 때마다 조상 숫자가 두 배씩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인구보다 한 사람 조상 숫자가 더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한 세대를 30년이라고 잡으면 700년 전(1319년)은 약 23세대 앞. $2^{23}$은 838만86808입니다. 실제 고려 시대 인구는 250만~300만 명 사이였습니다.


전 지구적으로 살펴봐도 예전에는 지금보다 인구가 훨씬 적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과 저 그리고 한글을 몰라 이 글을 읽을 수 없는 지구 어딘가에 사는 그 누군가의 조상이 언젠가는 한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말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계 성 J 우 작가가 지난해 1월 5일 뉴욕타임스에 쓴 'The Unexpected Branch on the Family Tree'를 읽어 볼 만합니다.


우 작가는 아내와 결혼 10주년을 맞아 DNA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자기 DNA 63.6%는 한국계였지만 26.1%는 일본계였습니다. 우 작가는 당연히 "놀랐다"고 썼습니다.


우 작가 역시 보통 한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본 그리고 그 나라 사람들을 불편하게 생각하면서 자랐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리사라는 일본인 여성과 요즘 말로 썸을 타기도 했지만 역시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그 이상 발전하지는 못했습니다.


우 작가는 내친 김에 어머니에게도 DNA 검사를 받아보도록 했습니다. 1940년생인 어머니는 우 작가에게 반일적인 태도를 가르친 인물. 그 결과 어머니는 21.1%가 일본계였고, 부모님 한 쪽 유전 정보를 알게 되면서 우 작가의 일본계 DNA 비율은 30.7%로 올랐습니다.



우 작가 집안이 예외적인 걸까요? 이렇게 부모가 모두 일본계 DNA를 가지고 있는 게 아주 드문 일일까요? 만약 저나 여러분이 같은 검사를 받는다면 결과가 많이 다르게 나올까요?


꼭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조상이 누군지 정말 모르니까요. 본인은 100% 영국인이며 독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한 이 동영상 속 남처럼 말입니다. 실제 검사 결과 이 남자 DNA는 30%가 영국계 그리고 5%는 독일계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DNA 검사 결과를 전해들은 우 작가 어머니는 "왜 내가 100년 전에 벌어진 일에 신경을 써야 하니? 내가 어쩔 수 있는 일도 아닌데…"하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에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가 더 중요하니까요.


위에서는 조상만 따졌지만 자손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은 형제자매 사이라고 해도 아마 100년만 지나면 두 사람 자손은 서로 누가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갈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여러분은 증조 할머니 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 알고 계시나요?


대신 촌스러운 혈연주의 같은 건 얼마든 버려도 괜찮습니다. 100년 후 제 후손 한 사람은 본인 스스로 100% 일본인이라고 믿고 살지도 모릅니다. 유전자 30.7%가 일본계인데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우 작가처럼 말입니다.


나중에 자손이 찾아볼 까 밝혀두면 영어 낱말 mystery는 2019년 현재 표준어로 '미스터리'가 맞단다. 제목을 저렇게 쓴 건 라임 때문에…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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