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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아르헨 여교수 "다시 한국이 부러워하는 나라 만들고파"

지난 번에 칠레에서 만나고 온 구스타보 아라야 씨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그때 칠레말고 아르헨티나도 함께 다녀왔습니다. 칠레는 물론 아르헨티나도 여러 사정으로 기사화하지 못했습니다. 칠레는 하고 아르헨티나는 안 하면 불공정한 것 같아서(?) 여기 소개할까 합니다. (이번에도 읽어보시면 왜 기사가 못 됐는지 아실 겁니다 -_-;;)


롤러코스터.

20세기 아르헨티나 경제를 설명하는데 이보다 어울리는 단어는 없다. 19세기 말 아르헨티나는 세계 10대 부국(富國)으로 손꼽혔다. 20세기로 접어들면서 경제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후안 페론 대통령이 내세운 '페론이즘'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원형으로 손꼽힌다.

20세기 말에 이르자 경제학자들이 ’20세기 최고 미스터리’라고 부를 정도로 몰락 속도가 빨라졌다. 정치 혼란도 계속돼 2002년에는 2주 동안 대통령이 세 번이나 바뀌기도 했다. 아르헨트나는 이해 결국 외채에 대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 이 해 아르헨티나 실업률은 25%였다.

인천공항에서 27시간을 쉬지 않고 날아 도착한 '남미의 파리'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도시 분위기에 아르헨티나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듯 했다. 한 때 잘 살았던 백인들의 도시. 유럽풍 건물이 가득한 거리 곳곳에 미술관이 넘치고 호텔도 깨끗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는 흥이 끊이질 않았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말처럼 전체적으로 도회적이고 우아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공항에서 구걸하듯 관광객에게 사설 택시를 잡아타라고 하는 모습에서 '엄마 찾아 삼만 리' 시절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호텔 여직원은 "그 택시 기사 대부분은 위조지폐로 거스름돈을 주는 사기꾼들"이라며 "여전히 백인 우월주의에 젖어 동양인을 노리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사실 기자도 속았다.

199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 정부는 환율 조절 능력을 상실했다. 아르헨티나 페소는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와 1대 1로 교환되기도 했다. 여전히 아르헨티나 은행에 있는 금융자동화기기(ATM)에서는 대부분 미국 달러를 인출할 수 있다. 국민들도 페소와 달러를 섞어 쓴다.

마라 바렌바움 씨(29·여)는 2005년 대학원을 마치고 직장을 잡았다. 첫 월급은 300달러 정도였다. 아르헨티나에서 일반적인 수준이었지만 만족하기 힘들었다.

때마침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지도교수가 한국 유학을 추천했다. 바렘바움 씨는 "한국과 아르헨티나 경제가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게 한국에서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라며 "40년 전에는 한국 사람들이 돈을 찾아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왔다. 지금은 우리가 한국의 산업 발전을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1965년부터 아르헨티나로 집단 이민을 떠나 농장을 꾸렸다.


바렌바움 씨는 서강대 국제대학원에서 2006년부터 2년 동안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공부했다. 지금은 부에노스아이레스대에서 국제금융학을 가르친다. 바렌바움 씨는 명함에도 서강대에서 공부하고 왔다고 썼다. 바렌바움 씨는 "한국에서 공부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자리잡지 못했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 도움이 없었으면 한국에서 공부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어 남미 국가와 한국 경제의 관계에 대해 "이미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칠레는 보완적인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역시 마찬가지"라며 "그런 점에서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 경쟁한다"고 설명했다.

아르헨티나는 경제는 여전히 농업과 목축업 중심이다. 농산물과 축산물이 국민총생산(GNP)의 14%, 전체 수출의 69.3%를 차지한다. 또 국토의 40% 이상이 목장과 방목지(放牧地)이고, 10%가 사료 작물과 목초의 농지로 돼 있다.바렌바움 씨는 "현재 아르헨티나 경제는 수출을 다양화 하는 것이 큰 과제"라며 "3차 산업은 발달한 편이지만 정보통신(IT) 기기 대부분은 한국산인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바렌바움 씨는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경제 발전의 바탕이 된 우리 문화 전반을 두루 살폈다. 그는 "유교문화부터 역사, 각종 사회 현상을 세심하게 살폈다. 특히 한국이 경제 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이룩한 외교적 성과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2002년 아르헨티나 정부가 디폴트를 선언하면서 국제 금융 시장에서 아르헨티나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아르헨티나가 올해 상환해야 하는 외채는 130억 달러 수준이고 20~70억 달러가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 외채는 국내총생산(GDP) 40% 수준인 1400억 달러나 된다. 이 때문에 국제채권국그룹 '파리클럽' 및 국제통화기금(IMF)과 관계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아직 구체적인 외교적 성과는 없다.


바렌바움 씨는 "(한국이) 어떤 사회문화적 현상의 영향으로 국가 전체가 힘을 모아 경제 발전을 이룩했는지 아직도 궁금한 것이 많다"며 "서강대에서 공부할 때 매주 수요일마다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가 와서 하는 강연이 있었는데 그게 기억이 많이 남는다. 시간이 부족해 묻고 싶은 것을 다 묻지 못한 건 지금도 아쉽다"고 말했다. 계속해 "특히 한국 회사에 있는 회식 문화가 재미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에 가장 같이 있기 싫은 사람이 직장 상사일 텐데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신다는 건 아르헨티나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며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경제 발전을 이룬 원동력 중 하나인 것 같다"며 웃었다.

젊은 남미 여성은 다정다감한 우리 국민성에 반했다. 바렌바움 씨는 "시장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들도 외국인에게 먼저 친근하게 다가와 '(한국말로) 예쁘다, 예쁘다'고 말해 안 사도 될 물건을 사기도 했다. 그런 친근함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아르헨티나에서도 장사를 잘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부에노스에서 코리아타운이 있는 지역 이름이 플로레스(Flores·스페인어로 꽃)다. 한국과 잘 어울린다"고도 했다.

경복궁 덕수궁 같은 고궁도 큰 관심사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기념품을 좀 들고 나와 달라'는 부탁에 바렌바움 씨는 수도권 지하철 노선도를 프린트한 손수건을 들고 나왔다. 그는 고궁이 위치한 지하철역을 정확히 짚으며 한국에서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는 "서구화된 도시 속에 완전한 동양이 숨 쉬는 풍경이었다"고 회상했다. 오랫동안 스페인 지배를 받은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 이민자들까지 밀려오면서 남미에서도 가장 유럽 같은 나라로 손꼽힌다.


지하철 이야기는 조금 더 계속 됐다.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도 지하철이 있지만 서울만큼 복잡하지 않다. 서울에서는 지하철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편했다. 이 손수건은 늘 노선을 확인하려고 한국에서 줄곧 가지고 다니던 것이라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가 동아일보사 사옥 근처에 있는 광화문역을 가리키자 "세종문화회관이 있는 곳"이라고 기억을 떠올렸다.

한국의 높은 교육열도 인상에 깊게 남아 있다. 바렌바움 씨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는 봉사를 한 적이 있다. 너무 작은 아이들까지 공부하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며 "처음에는 아이들이 대부분 나이보다 너무 어려 보여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나이 세는 방식을 잘 몰랐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아르헨티나도 남미에서 문맹률(3%)이 가장 낮은 국가다. 초중고는 물론 4~6년 과정인 대학도 전액 무료다. 대학은 들어가기는 어렵지 않지만 졸업 요건이 까다롭다. 바렌바움 씨는 "아르헨티나 대학 시험도 어려웠지만 한국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은 문자 그대로 '미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문화에 대해 공부하면서 바렌바움 씨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도 일할 때는 검은 정장을 주로 입지만 그 외에는 패션이 다양하다. 또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이 문화가 풍성하다. 한국에서는 다들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표정"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건국 200년을 맞이한 아르헨티나는 대표적인 이민 국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를 걷다 보면 백인종은 물론 전통 의상을 차려 입은 인디오, 머리에 야물커를 쓴 유대인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국민 대부분은 '투잡족'이다. 직업 하나는 예술과 연결된 것도 특징이다. 은행원이면서 밤에는 재즈 피아니스트인 식이다. 그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독재 정부 아래 표현의 자유를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다. 또 하루아침에 온 국민이 파산하면서 정신적 풍요가 필요했다. 예술을 통해 힘든 시절을 이겨낸 것"이라고 말했다. 대낮에 골목에서 탱고를 즐기는 풍경과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 젊은이들이 벽에 그린 그래피티는 어느덧 이 도시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됐다. 이민자들이 만든 풍성한 음식 문화도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


그는 "앞으로 문화의 세기가 펼쳐지면 풍요로운 문화가 경제 발전과 직결된다. 그런 점에서 다양성이 아르헨티나 경제가 다시 재도약 하는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본다"며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역설적으로 (외국인 기준으로) 환율이 내려 관광 수지도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바렌바움 씨는 "여전히 외채 상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두고 논란이 있지만 200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 경제 발전 속도는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며 "다시 한국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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